이 총리의 거짓 해명이 거듭되자 모럴 해저드(moral hazard·도덕적 해이)에 빗대 ‘오럴 해저드(oral hazard·언어적 해이)’라는 비아냥거림도 이어졌다. “왜 그렇게 말을 바꾸느냐”는 질타엔 엉뚱하게도 “충청도 말투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게 부정적인 여론을 더 자극했고 결정적인 낙마의 계기가 되었다.
왜 진실이 드러날 걸 알면서도 부인부터 하는 걸까? 친분이 노출될 경우 쏟아질 낙인찍기를 우선 피하려는 방어심리가 작용한 것이다. 또한 나중에 밝혀져도 거짓말을 했다는 데 대한 사회적 제재가 약하기 때문이라는 진단도 있다. 이번 사건은 세련된 정치적 화법에 대한 훈련이 미숙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지금껏 한국 정치에서 거짓말은 필요악(必要惡)으로 인식되곤 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위정자(爲政者)의 말 바꾸기에 아주 신물이 난다는 여론이 거세다. 닉슨 대통령도 워터게이트 해명 과정에서 거짓말로 물러난 것이다. 이젠 한국 정치권에서도 거짓말을 원로정치인의 성희롱처럼 금기시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총선이 1년 앞으로 다가오면서 지난 선거 낙선·낙천자의 정계복귀를 노리는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울산에서도 상당수 지역구에서는 현직과의 재대결 등 흥미 있는 승부가 예상되는 만큼 지역정가의 관심 역시 집중되고 있다. 대한민국 제20대 총선은 2016년 5월 30일부터 4년 임기의 제20대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로 2016년 4월 13일에 치러진다. 1년이 채 남지 않았다. 이러다보니 자천타천 국회의원 희망자가 활개를 친다. 제20대 총선에 출사표를 준비하는 다수의 출마예상자들은 자신의 깜냥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하고 있는 상황이다. ‘깜냥’은 스스로 일을 헤아림, 또는 헤아릴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농사를 모르는 사람들은 논에 물이 가득 차 있으면 벼가 잘 자라는 줄 안다. 하지만 논에 물이 항상 차 있으면 벼가 부실해서 하찮은 태풍에도 잘 넘어진다. 가끔은 물을 빼고 논을 비워야 벼가 튼튼해진다. 우리도 때로는 삶의 그릇에 물을 채워야 할 때가 있고 때로는 물을 비워야 할 때가 있다.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채우고 또 비우는 과정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비움과 채움에도 때가 있다는 시절인연을 생각하는 정치인들이 넘쳐난다면 좋은 세상이 될 터인데 그러지 못한듯하여 아쉽다.
사람과의 만남도, 일과의 만남도 소유물과의 만남도, 깨달음과의 만남도, 욕심이나 과욕과의 만남도, 유형·무형의 일체와의 만남에는 모두 때가 있는 법이다. 아무리 만나고 싶어도 시절인연이 무르익지 않으면 지천에 두고도 못 만날 수 있고, 아무리 싫다고 발버둥을 쳐도 시절의 때를 만나면 기어코 만날 수밖에 없으며, 아무리 고사하여도 때를 만나면 권력자의 위치에 다다른다. 모든 마주침은 다 제 인연의 때가 있는 법이다. 이것이 ‘시절인연’이다.
내년 총선에 출마를 희망하는 정치인은 자신의 ‘깜냥’ SPEC(스펙)을 분명히 인지하고, 거짓말하는 ‘양치기정치인’이 아닌, 유권자를 섬기며 지역과 나라의 발전만을 고집하는 참 정치인들만의 대결의 장(場)이 되기를 기대한다.
<신영조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