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사고’
‘배달사고’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4.26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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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칼럼의 주제는 우리 ‘배달의 기수’들이 오토바이를 몰고 가다 자주 당하는 그런 배달 사고가 아니다. 명절을 전후해서 백화점이나 우체국에서 이따금씩 일어나곤 하던 명절선물 배달사고도, 선거철에 드물게 끼어들던 특정후보 우편홍보물의 배달사고도 아니다. 검찰수사가 시작됐다 하면 으레 등장하는 뇌물이나 정치자금을 둘러싼 배달사고를 말하려는 것이다.

거물급 야당 지도자이자 민주산악회의 정신적 지주였던 YS(김영삼 전 대통령) 전성시대의 배달사고 일화는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좌(左)동영’인지 ‘우(右)형우’인지 기억은 흐릿하지만, 이 두 분 중 어느 한 분이 고백한 배달사고는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선생님 활동자금(정치자금)을 어찌어찌해서 어렵사리 구해놓고 나면 일부는 우리가 좀 빼돌려 썼지요. 선생님(YS)께는 미안해도 다들 민주화운동 하다 보니 찢어지게 가난하던 시절이라…. 나중에 혹 선생님이 아신다 해도 아량으로 보아주실 거라 믿고 그리 한 거지요 뭐.” 이야기인즉슨 ‘선생님 이름’을 대고 정치자금을 한 1억원쯤 구해오면 그 중 3∼4천만원은 따로 챙겨 집안 살림에도 보태는 등 개인적으로 좀 실례했다는 이야기였다.

최근에는 ‘배달사고’란 말이 ‘성완종 쪽지’에 등장하는 정치자금 수수 의혹 대상자 8인 가운데 한 사람의 입에서 먼저 튀어 나왔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1억원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홍준표 경남지사가 바로 당사자다. 홍 지사는 1억원 수수 의혹이 불거지자 ‘배달사고’ 가능성부터 암시했다. 지난 10일 이렇게 말했다. “측근을 빙자해서 누군가가 접근할 수도 있다. 정치권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가면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고인이 악의나 허위로 썼다고 보지 않는다. 내가 (돈 받은 게) 아니니까 나한테 줬다는 것은 아니다.”

성완종 전 회장이 누군가에게 돈을 줬을 수는 있지만 자기는 안 받았다는 주장이었다. 그렇다면, 성 전 회장의 금고지기로부터 건네받은 1억원을 돈 주인(홍 지사)에게 제대로 전달(배달)하지 않고 입 싹 닦은(사고를 친) 이는 과연 누구인가. 시선은 당연히 ‘중간 배달자’ 윤 모 전 경남기업 부회장에게 돌려졌다. 이번에는 윤 전 부회장이 발끈했다. 신병 치료차 병원에 입원중인 것으로 알려진 윤 씨는 지난 17일 평소 친분이 두터운 지방언론사 기자 A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무슨 배달 사고냐.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다.” 1억원을 홍 지사에게 분명히 전달했다는 뉘앙스의 이야기였다. A씨는 또 이렇게 반문했다. “윤 전 부사장은 돈이라면 아쉬울 게 없는 사람인데 배달 사고라니요?”

좌우간, 홍 지사와 그 주변사람들의 입씨름이 꼬리를 문 이후 경남지방을 중심으로 이런 우스개가 나돌고 있다. 홍 지사의 ‘무상급식 철폐’ 시책을 빗대어 “‘무상급식’(‘구속수감’을 의미)을 제일 먼저 받아야 할 사람”이라거나 홍 지사의 이름(준·표)을 빗대어 “우리가 준 표, 돌려내라”는 등의 우스개다.

1억원짜리 ‘배달사고’ 공방이 이어지는 시점에 조선닷컴에 올라온 한상혁 기자의 4월 15일자 기사는 꽤나 흥미롭다. “‘배달사고 공방’은 정치인 뇌물 의혹 관련 수사에서 빠지지 않는 레퍼토리다. …검찰 관계자는 ‘뇌물 사건에서 피의자들이 돈 받은 혐의를 어떻게든 피해보려고 배달사고임을 주장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성완종 리스트’ 사건에서 ‘뇌물의 종착점’으로 지목된 거물 정치인들의 입에서 ‘배달사고’란 말이 다시 여러 번 등장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격은 딴판이지만 우리네 정치인들도 ‘배달의 민족’의 일원인 것만은 분명한 모양이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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