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칼럼] 송석하의 ‘대광대’ 명칭에 대한 단상
[김성수칼럼] 송석하의 ‘대광대’ 명칭에 대한 단상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4.21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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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남(石南) 송석하 선생은 우리 민족의 격동기에 자신의 삶을 바쳐 전통 민속의 발굴과 보존, 그리고 나아갈 길을 보여주고자 했던 민속학자입니다. 또한 자신이 현장에서 수집한 자료로 국립민속박물관의 전신인 국립민족박물관을 1946년에 설립하였습니다.” 이 글은 전 국립민속박물관장 김홍남이 2004년 송석하 탄생 100년이 되는 해에 출간한 ‘석남 송석하-한국 민속의 재음미’란 저서의 인사말 부분이다. 송석하 선생은 1904년 10월 11일 경남 울주군 상북면 양등리에서 출생하였다. 구태여 출생지를 밝히며 장문을 인용한 것은 우리 고장이 낳은 자랑스러운 1세대 민속학자이기 때문이다.

울산 도화골이 죽광대(竹廣大) 놀이의 시원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2012년 11월부터 울산매일에 11건, 2013년 8월부터 울산신문에 8건(기고 1건), 경상일보에 1건(기고 1건)이 각각 보도된 것을 확인하였다. 이를 계기로 송석하가 인식한 광대와 오광대 그리고 대광대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았다. 도화골은 현재 울산 중구 복산동 일대이다. 죽광대는 이름 그대로 대나무를 이용하여 다양한 재주를 부리는 광대를 말한다.

광대가 무엇일까. 송석하(宋錫夏, 1904∼1948)는 그의 저서 <傳承音樂과 廣大(1935)>에서 “광대라는 말로서 최초에 나타나는 문헌은 현재까지 판명된 것으로 고려사 폐행전(嬖倖傳) 전영보전(全英甫傳)에 ‘…國語假面爲戱者謂之廣大…’라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한 같은 글에서 “대체로 광대는 이조(조선조)에 있어서는 물론이요 고려 말부터 소위 천인계급에 속한만큼 그 시대 그 지방에 따라 특수계급의 유무 및 그 세력이 광대에 미치는 정도라든지 인척연사의 관계로 하여…사회적 지위가 약간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는 ‘전승음악과 광대(동아일보. 1935. 10. 03.기고)’에서는 “전래음악과 그에 관계해 온 음악가 즉 광대가 그것이다”라고 광대를 음악가 개념으로 정리하고 있다.

같은 글에서 하규일(河圭一, 1867∼1937)은 “일반사회에서는 예인을 총칭하여 광대라 하고 그들 자체에서는 가인을 창부라 하고 땅재조, 줄타기, 장고잡이 등을 광대라 하였는데 그 외에 인형 역자 가면극 역자까지 포함하였다.”라고 하여 광대의 개념을 예인의 총칭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는 같은 글에서 광대와 사당의 다른 점을 소개하면서 광대는 정착하여 거주하며 자기의 수입 지출을 자기 스스로가 처분한다는 점, 사당은 여자 중심이고 광대는 남자 중심이란 점을 밝히고 있다.

<창악대강>을 저술한 박헌봉(朴憲鳳, 1907∼1977)은 신재효(申在孝, 1812∼1884)의 광대가(廣大歌)를 소개하면서 “성인이 작악하사 성정을 기르고 인재를 길러서 신지를 사하고 상하를 화케하니 그 체용 공효가 광대심체하다는 뜻으로 악인들을 광대라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말은 서경무곡(書經舞曲) 명기장(命夔章) 주(註)에 나온다는 것을 주(註)에서 밝히고 있다.

이상의 사례에서 광대란 말의 최초 출처는 중국이며, 가면을 쓴 예인을 총칭하는 말이지만 개념은 학자의 인식 정도에 따라 견아착종지격(犬牙錯綜之格)임을 알 수 있다.

오광대는 무엇일까. 그는 <오광대 소고(조선민속, 1933)>에서 “오광대라는 것은 경남 지방을 중심으로 전승하여 온 민속가면극을 지칭하는 것이다.……오광대를 직접 포태하여 분만한 것은 초계 밤마리의 ‘대광대’임은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좌수영(동래군), 부산 동래, 김해 창원(마산), 통영의 오광대급 야유(야류라고 칭) 이입 계통이 모두 초계에서 원류를 시작하였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대광대의 개념을 정리해 보았다. 그는 <오광대 소고(조선민속, 1933)>에서 “대광대는 일종의 곡예사로서 놉흔(높은) 竹竿上에서 재조(才操)를 하는 것을 지칭하는 것인데, 그 곡예의 부속으로 가면극도 하여 온 것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그는 ‘민속극 동래야류(1935년)’라는 글에서 대광대에 대하여 “한국에도 상당히 오래전부터 수입된 것임을 알겠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에 김경남은 ‘동래야류(2000)’에서 “오광대. 야류가 산대도감 계통 극이라 한다면, 초계 대광대패의 탈놀음은 산대놀이의 예인들인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산대놀이의 중심지는 서울(녹번동, 아현동, 노량진, 퇴계원, 사직골, 양주, 송파 등지)로서 대광대의 활동지가 영남보다는 경기지역에 치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의 글을 정리하면 가면 쓴 악인을 총칭하는 광대를 크게 ‘오광대’와 ‘대광대’로 구분할 수 있다. 또 오광대는 소규모로 다섯 광대의 놀이가 중심이며, 대광대는 대규모로 오광대를 포함한 창부, 땅재주, 줄타기 등 다양한 레퍼토리와 여러 광대가 등장하는 공연을 일컫는 이름으로 정리된다. 즉 ‘죽광대’는 대광대와 동격의 다른 이름이 아닌 대광대에 속하여 하나의 기능적 역할을 하는 죽광대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대광대는 오래전부터 수입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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