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8.12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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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는 아직 기승을 부리지만 계절은 이미 입추가 지나 가을의 문턱에 들어섰다. 들판의 올벼도 벌써 영글고 있어 머지않아 단풍이 지는 조락의 계절도 맞게 될 것이다.

오곡이 풍성한 가을은 결혼의 계절이기도 하다. 올해는 예년에 비해 불경기여서 혼사를 앞두고 한숨을 쉬는 가정이 많을 것이다. 허례허식인줄 알면서도 남의 눈을 의식해 과도한 결혼비용을 지출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서구문화의 영향으로 우리의 전통 혼례 의식도 골동품이 된지 오래다.

필자는 지난 달 중유럽의 대표적인 민주 국가 스위스에서 거행되는 결혼식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연간 국민 소득 4만 달러가 넘는 부유한 국가의 중산층 결혼식이 너무나 검소하고 실용적인 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7월 23일 취리히에서 기차로 2시간 거리인 델레몬시의 시청에 마련된 결혼식장에서는 신랑 신부와 각 측의 증인 1인, 양가 직계 가족과 친지 등 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하고 조촐한 결혼식이 거행되었다.

신랑(이브·32세)은 독일에 유학, 공학을 전공하여 초정밀 기계설계사로 활동 중인 엘리트였으며 한국 출신 신부(한승희·34세)는 독일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한 유능한 설계사였다.

결혼식장의 신부는 화려한 드레스 대신 평상복이었고, 신랑 역시 평범한 신사복 차림이었다.

한 번 입고 방치할 결혼드레스를 많은 비용을 들여 준비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한국에서처럼 많은 시간과 경비를 들여 고궁이나 절경을 찾아다니며 미리 찍는 결혼사진이 왜 필요하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정각 오전 11시가 되자 시청 공무원 3명이 배석하여 신랑 신부와 증인을 학인하고 결혼의 법적인 의미와 스위스의 가족법, 재산법, 자녀 양육권 등에 관해 독일어와 프랑스어로 20분간 설명했다. 이어 신랑 신부와 증인의 서명, 입회 공무원의 확인 서명 순으로 35분에 걸친 결혼식은 모두 끝이 났다.

이어 신랑 신부 측은 참석한 하객들을 초청, 별도로 마련된 연회장에서 피로연을 베풀었는데 포도주와 조촐한 오찬이었다.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에서 모두가 신랑 신부의 결혼을 축하하는 인사로 시간을 보내었다. 오후 4시가 넘자 하객들은 하나 둘 자리를 떠났으며 결혼식은 모두 마무리 되었다.

그 나라 국민들의 결혼식이 다 같은 수준은 아니나 대부분이 이들과 유사하다고 했다.

스위스 고소득 국민의 허례허식이 없는 검소한 결혼식은 참석한 한국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컸다.

모두가 글로벌화 되어가는 시대에 밀려오는 외래문화를 수용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우리의 정서와 체질에 어울리는 올바른 문화로 수용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얼마 전 광주시 교육청 관내 모 학교 교장의 아들 가짜 청첩장 사건 같은 웃지 못할 일도 이 땅에 다시 생기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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