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 창출 돕고 사업 뒷바라지도
의뢰인이 가장 좋을때 함께할 수 있어 보람”
“권리 창출 돕고 사업 뒷바라지도
의뢰인이 가장 좋을때 함께할 수 있어 보람”
  • 김정주 기자
  • 승인 2015.04.07 20: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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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희 변리사
 

뜨는 직업 ‘변리사’… 깊이 있는 지식만큼 다방면 상식 가져야

발명 즐기시던 아버지 모습 가슴에 새기며 직분에 충실

특허법인 태백의 울산사무소(남구 삼산로 우리은행 3층)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손정희 변리사(41·사진). 그녀는 울산에서 다섯 손가락 안쪽이라는 몇 안 되는 변리사 중의 한 사람이자 울산지역 유일한 여성 변리사다.

식품영양학 학사→기계공학 석사로 급변신

대학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했지만 석사 과정은 전혀 엉뚱했다. 기계공학(자동차선박기술대학원)으로 급선회한 것이다. 방향전환은 필요에 의한 선택이었고 ‘변리사 자격증’을 향한 집념의 표시였다.

“변리사 하는 데는 깊이 있는 지식보다 여러 방면의 상식이 차라리 더 나을 거라 생각했어요” 한 우물만 파지 않은 이유에 대한 해명으로도 들렸다.

손 변리사의 설명에 따르면 ‘변호사’와 ‘변리사’는 닮은꼴처럼 보여도 엄연히 다르다. 1, 2차 고시의 관문을 통과해야 자격증이 나오는 법률전문가라는 점은 비슷하다. 그러나 이전의 전공, 이후의 업무영역은 사뭇 딴판이다.

변호사는 문과 출신이 대부분이지만 변리사는 이과 출신이 압도적이다. 변리사 응시자의 98%가 이공계 출신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자연과학개론’은 변호사 고시가 아닌 변리사 고시에 필요한 과목이다.

“변리사, 의뢰인이 가장 좋을 때 찾는 대상”

변리사가 하는 일은 단순히 발명특허 출원을 대행하는 수준은 아니다. 업무영역이 꽤나 넓다. “권리가 생기도록 도와주는 일부터 분쟁이 생겼을 때 대리하는 일까지 우리 변리사들 하는 일, 무척 많아요” 손 변리사의 귀띔이다.

하는 일로 치면 변리사는 변호사와 근본부터 다르다. 산업재산권 출원과 등록, 재산권 상담 및 권리 취득, 분쟁 해결에 이르기까지 특수하고도 광범위하다.

‘권리의 창출과 보전’ 말고도 사업 뒷바라지를 뜻하는 ‘기술사업화’를 돕는 일도 변리사의 직무에 속한다. 특허권, 지적재산권, 실용신안권, 의장권, 상표권은 어느 하나 예외 없이 변리사의 손길을 거쳐야 비로소 ‘살아있는 생명체’로서 존재 의의를 지닌다.

의뢰 처리의 건수 면에서는 권리를 창출하는 ‘특허 출원’이 ‘분쟁 해결’ 쪽보다 훨씬 많다. 그러기에 보람은 남다르고 진하다. “의사나 변호사는 환자나 의뢰인이 안 좋을 때 찾지만 우리 변리사는 정반대죠. 의뢰인이 인생에서 가장 좋은 순간에 찾는 대상이 변리사이니까요.”

전국 등록변리사 4천명…여성변리사 25%

전국적으로 등록된 변리사는 4천명을 헤아린다. 그 중에 여성 변리사는 4분의 1 즉 25%나 된다. 여성으로서도 얼마든지 도전해볼 만한 매력적인 직종인 셈이다.

이들 가운데 사업자등록을 마치고 특허법인을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변리사는 900명 남짓이다. 나머지는 대기업에서 일하거나 공동사무실에 동참하기도 한다.

변호사처럼 변리사도 치중하는 분야가 서로 다르다. 기계, 전자, 화학, 바이오 등의 전문분야를 파고든다.

어떤 의미에서 변호사가 기우는 직업이라면 변리사는 한창 떠오르는 직업이다. 변리사는 고소득이 보장되는 탄탄한 직업인이라는 시각도 있다. 손 변리사는 그러나 ‘고소득 직업인’은 편견이라고 손사래를 친다. ‘저마다 하기 나름’이라는 의미로 다가왔다.

손 변리사는 변리사 지망생들에게 ‘법’과 ‘과학’에 대한 소양을 각별히 주문했다.

작고한 부친 등 가족 4명이 ‘울산대’와 인연

만나기로 약속한 날 손정희 변리사는 대학교 두 군데를 먼저 다녀왔다. 울산과기대(UNIST)는 특강 나가느라, 울산대학교는 교수 상담이 있어서였다.

이날 UNIST 특강의 주제는 ‘지식재산권의 특질’. 다른 때도 그렇지만, 강의를 듣는 재학생 중에는 전공과목을 떠나 발명을 무기로 창업을 꿈꾸는 ‘청년창업 희망자’가 의외로 많다. 그래서 늘 듬직하고, 학교 측도 그런 배경에서 그녀에게 자주 도움을 청한다.

울산대학교라면 손 변리사는 물론 가족 전체와 인연이 깊다. 우선 그녀는 이 학교에 93학번 입학생이다. 기계공학 석사 과정 또한 울산대 대학원에서 밟았다. 그리고 본업(변리사 직무)에 너무 소홀해질까봐 잠시 그만두긴 했지만, 지난해까지 약 3년 반 동안 이 학교에서 정규 강의를 맡은 것도 그녀다.

울산대학교와의 인연은 그녀의 부친 고(故) 손충익 선생(2002년 작고)으로부터 시작된다. 부친은 일찍이 울산대 교육대학원을 나왔고, 척과초등학교 교장 직을 끝으로 38년간, 그것도 울산에서만 교육 외길을 걸었던 참 교육자이셨다. 그리고 손위 언니는 울산대 영어영문과를 나왔고, 손아래 여동생은 현재 울산대학교병원 마취과 의사로 봉직하고 있다. 다섯 식구 가운데 어머니를 제외한 네 식구가 울산대 가족인 셈이다.

“결혼요? 안 간 게 아니라 못 갔어요”

손 변리사는 가족을 참 소중하게 여긴다. “우리 식구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저의 종교는 가족이에요” 서울서 근무하다 부친이 돌아가신 그 이듬해에 울산으로 다시 돌아온 것은 ‘가족’이란 신앙공동체의 재구성이라는 소명의식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고 나서 어느덧 열두 해째가 지나고 있다.

가족에 대한 신앙심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아버지는 교단에 몸담으실 때 가산점이 주어지는 ‘벽지 근무’를 고집스러울 정도로 외면하셨다. 가족과 떨어져 살기를 전혀 원치 않으셨기 때문이었다.

따지고 보면 변리사가 된 것도 아버지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생전의 아버지는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 만드는 일의 즐거움에 빠지시곤 했다. 바로 발명하는 일에 심취하시는 일이었고, 손 변리사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늘 가슴속에 새겨두곤 했었다.

그녀는 이제 이루고 싶은 것은 거의 다 이루었기에 성취감이 남다를 법도 하다. 하지만 거짓말 같게도, 아직 결혼 문제만큼은 미완의 장으로 남아 있다. 본의 아니게 혼기를 놓치고 만 것이다. “결혼요? 안 간 게 아니라 못 갔어요.”

평생 반려자의 상도 그녀의 마음속에는 이미 그려져 있다. 작고하신 아버지처럼 마음이 따뜻한 ‘마음 부자’라고 귀띔한다.

울산에서 ‘시내 학교’에 속하는 수암초등, 중앙여중을 나왔다. 하지만 마음의 고향은 늘 울주군 상북면 향산이다. 외가가 향산인 탓이라 했다. 배우 김태희보다 6회 선배인 울산여고 39회 출신이다.

글= 김정주 논설실장·사진=정동석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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