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엔딩’
‘벚꽃 엔딩’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4.05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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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런 기(=이런 것이) 진짜 동네잔치 아이가!” 지난 4일 남구 삼호동주민센터 앞 무거천 일대에서 펼쳐진 ‘궁(弓)거랑 벚꽃 한마당’에 놀러온 한 50대 시민의 입에서 나온 감탄사다. 인파가 떡가래처럼 꼬리를 문 이날 벚꽃 잔치에는 모창가수 ‘나운하’가 ‘땅콩 회항’ 사건을 빗대어 작사한 트로트 곡 노랫말 속의 ‘갑순이’도 ‘을식이’도 따로 없었다. 무료 코너(솜사탕&쫀드기, 팝콘&음료, 봄꽃 나누기)와 1천원짜리 호떡 코너는 여느 해나 다름없이 장사진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새로 추가된 것도 있었다. 봄을 시샘한 탓일까, 해도 저물기 전에 불쑥 찾아온 짓궂은 비바람의 장난이었다. 그 서슬에 우수수 떨어진 연분홍 고운 빛깔의 벚꽃 잎들이 궁거랑 물길을 따라 흘러간 곳은 어디쯤이었을까. 그럴 즈음 갑자기 들려온 감미로운 멜로디 하나가 차갑게 식은 귓불을 예민하게 더듬기 시작했다.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오늘은 우리 같이 걸어요 이 거리를/ 밤에 들려오는 자장노래 어떤가요 (oh yeah)/ 몰랐던 그대와 단 둘이 손잡고/ 알 수 없는 이 떨림과 둘이 걸어요/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UhUh) 둘이 걸어요…”

3인조 밴드 ‘버스커 버스커’(Busker Busker)의 보컬 장범준이 ‘고3 기말고사를 끝낸 후 사랑니가 나는 고통과 입시의 시련을 봄과 결부시켜’ 스스로 가사와 곡을 붙였다는 ‘벚꽃 엔딩’이었다. 그냥 듣기가 좋아 휴대전화의 발신·착신 음악으로 골랐던 때가 지난해 벚꽃 철이 끝날 무렵 새 스마트폰을 구입하던 4월 하순쯤이었으니 벌써 1년이 다 되었나? 그 뒤로 가끔씩은 식상한 것도 같아 바꾸어야지 하고 몇 번이나 맘먹었으면서도 귀찮다고 끝내 미룬 것이 어쩌면 잘한 일이었을까. 엊그제 누군가가 귀띔한 ‘벚꽃 철에 딱 맞는 절묘한 선곡’이란 말을 들으면 그럴 법도 하겠다. 어찌했건, 3년 전 3월 29일에 처음 발표되었다는 이 서정적이고 중독성 짙은 ‘벚꽃 엔딩’은 이제 대표적인 봄노래로 자리를 잡았다고 해서 지나친 것 같지 않다. 그런 평이라면 연예가의 호사가들이 더 호들갑이다. ‘치명적 매력’, ‘벚꽃연금 타는 계절’, ‘벚꽃 엔딩 또 역주행’, ‘벚꽃 좀비 신화의 부활’ 등등 온갖 선정적인 용어들을 아낌없이 구사한다. ‘역주행’ ‘좀비’는 계절과 더불어 사라졌다가 벚꽃 철 3, 4월만 되면 되살아나 각종 음원 차트를 ‘점령’하는 이상 현상을 두고 한 말이다. ‘뉴스엔’의 한 인턴 기자는 며칠 전 기사 말미에 이런 표현을 달았다. “…좀비에 몰리면 위험하다. 서정적 감성을 가진 ‘벚꽃 엔딩’이 치명적 매력을 발산하는 건 한 번 물려본 사람들의 반복학습 효과 덕분이다. 3년째 우리는 ‘벚꽃 좀비’의 부활을 지켜보고 있다.”

말 나온 김에 처음 20명에서 3인조 밴드로, 다시 벚꽃 이파리처럼 뿔뿔이 흩어진 음악그룹 ‘버스커 버스커’는 그 이름의 유래라도 한 번쯤 짚고 넘어가자. ‘버스커(busker)’는 원래 ‘길거리에서 공연하다’라는 뜻의 ‘버스크(busk)’에서 가지를 친 낱말이다. 뿌리를 같이하는 ‘버스킹(busking)은 ‘거리 공연’을, ‘버스커(busker)’는 버스킹 하는 공연자 즉 ‘거리의 공연자’를 의미한다고 한다.

‘버스킹’이 잘 이루어지는 도시로는 프랑스의 파리, 아일랜드의 더블린, 우리나라의 홍대 근처가 손꼽히기도 한다. 그런데 3인조 밴드 ‘버스커 버스커’는 더 이상 봄과 함께 돌아오지 않는다. 그들은 각자의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 가운데 가장 많이 알려진 리드보컬 장범준은 지난해 배우 송지수와 결혼해 예쁜 딸을 얻었고, 밴드 활동을 잠시 중단하고 천안에서부터 해 왔던 ‘거리문화 활성화’ 사업에 전념하고 있다고 전한다. 하지만 사람보다 노래가 오래 남는다고 했던가. 3인조 밴드 ‘버스커 버스커’가 연주하고 부른 ‘벚꽃 엔딩’은 아직도 소멸과 부활을 거듭하는 좀비처럼 해마다 봄철이면 그 존재를 과시하곤 한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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