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소나무
위기의 소나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3.29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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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동네 뒷산에 올랐다. 이른 아침이라 봄기운이 제법 감돌기도 하지만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그리 많진 않았다.

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펴고 이리 저리 살펴가며 산의 초입을 조금 지났을 때였다. 등산로 옆 둔덕의 숲속에 재선충병으로 베어낸 녹색 나무무덤이 수도 없이 자리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안타까운 마음은 두말할 것도 없고 왠지 무서움마저 들었다.

한동안 산을 외면하긴 했지만 어느새 산의 모습은 험하게 달라져 있었다. 정말 심각한 일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듬성해진 나무들 사이로 뿌연 봄하늘이 훤히 보였다. 그나마 남은 나무들은 대개가 아카시아나무와 갈참나무들이었다. 이런 추세라면 얼마 가지 않아 소나무는 전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숲은 전에도 그리 멋진 소나무가 자라는 숲은 아니었다. 거의가 외래종 리기다소나무였지만 사철 푸르름은 잎을 다 떨어뜨린 활엽수 속에서 도심에 찌든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활력을 주었다.

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히도 지난 3월 16일부터 산림청이 소나무재선충병 확산을 막기 위해 전국 소나무류 이동 특별단속에 나섰다는 소식을 들었다.

산림청 분석 결과 지난해 재선충병이 새로 발생한 전국 15개 시 군 가운데 서울 성북구와 충남 태안 강원 정선 경북 김천 등 8곳은 인위적 확산지로 밝혀졌기에 재선충병 확산의 절반은 사람 탓인 것으로 결론지었다는 것이다.

재선충을 옮기는 솔수염하늘소와 북방수염하늘소의 연간 최대 이동거리가 3㎞에 불과하고 확산된 지역은 기존 발생지로부터 수 십㎞ 떨어진데다 주변 제재소의 보관 목재에서 매개충의 흔적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발병 전 잠복기에 있는 감염목을 가공해 운반하면 그 나무 안의 매개충이 함께 이동하여 증식된다고 하는데 아직 재선충 자체를 없애는 방제약은 개발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매개충들의 천적도 없다고 한다. 현재로서는 감염목의 훈증이나 파쇄 소각 그리고 페르몬이라는 화학물질로 유인하여 매개충을 포획하는 페르몬 트랩 등의 방법과 방제 현장을 벗어나지 않도록 이동을 막는 방법뿐이라니 우리 숲과 우리 소나무를 지켜내고 지키는 일은 여간 중요하고 어려운 숙제가 아닐 수 없다.

소나무는 구과목 소나무과의 식물이다. 원산지는 한국과 일본으로 우리나라에서는 30여 그루에 달하는 소나무를 천연기념물로도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고 하는데 대부분 솔잎혹파리 등 해충으로 인한 병충해의 예방과 보존 작업에 힘쓰고 있다고 한다. 이웃 일본의 경우 1905년 큐슈 나가사키 항구지역에서 처음으로 재선충병이 발생됐다고 하는데 그 이후 교토와 많은 지역으로 확산되어 1900년대 초 소나무 면적은 176ha에서 현재 75ha로 줄어든 상태라고 한다.

가끔씩 일상이 갑갑하거나 자연 속에서 말없이 그들의 위로를 받고 싶을 때 소나무숲이 울창한 양산 통도사의 암자를 찾는다. 그때마다 숲을 메우고 있는 아름드리 붉고 푸른 소나무를 볼 때면 그 기백과 기상에 우선 압도당하고 막혔던 가슴통이 솔바람에 스르르 뚫리는 느낌을 받는다. 다행히 심산의 숲속 소나무는 아직은 청정한 모습으로 그 면모를 유지하고 있고 다른 곳의 고궁이나 국립공원 문화재 주변의 소나무는 선택적 방제작업 때문인지 재선충병의 공격을 받지 않은 듯하다. 그렇지만 조금이라도 방심한다면 숲에서 소나무의 존재는 시나브로 사라질지도 모른다.

우리는 분재된 소나무나 정원의 병약한 소나무를 완상하기보다 천지간 대자연 속의 건강한 소나무를 오래 보고 싶은 것이다.

<이정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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