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수교 50주년과 이예 선생
한일 수교 50주년과 이예 선생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3.2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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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대일본 외교의 최일선에서 활약한 이예 선생의 동상이 국립외교원에 세워졌다.

25일 열린 제막식에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벳쇼 고로(別所浩郞) 주한 일본대사도 참석했다.

외교부는 당초 이날 제막식에 조태용 1차관이 참석한다고 공지했다. 그러나 당일 행사에는 윤 장관이 직접 참가해 제막식의 격을 한층 높였다.

윤 장관은 축사에서 지난 주말 서울에서 열린 한중일 3국 외교장관회의를 언급하고 “역내 긴장으로 지난 3년간 단절된 3국간 협력체제가 우리 주도로 복원됐고 이를 통해 3국간 협력뿐만 아니라 양국간 관계증진을 위한 중요 전기를 마련했단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 만큼 한일간의 협력체제가 절실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벳쇼 대사도 축사에서 “500년 전에 이예 선생이 제시한 교린(交隣)외교의 정신을 되새겨서 앞으로의 50년, 100년을 향해 함께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화답했다.

한일 관계가 개선되기를 바라는 것은 일본도 마찬가지다.

여말선초(麗末鮮初) 시기 울산을 비롯한 해안 지방에는 왜구의 침탈이 극심해 민생이 파탄지경에 이르렀다. 조선은 창업이후 한양 천도 등 건국사업과 양차 ‘왕자의 난’ 등 권력다툼이 일단락되자 왜구의 거점인 대마도 정벌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힘으로만 외교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효과적인 외교를 위해서는 ‘교린책’도 필요한 것이다. 그 교린정책의 첨단에 이예 선생이 계셨던 것이다.

올해는 광복 70주년과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는 해이다. 1965년 식민통치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정부는 수교를 단행했다. 국민들은 저항했다. 국민의 상처는 그만큼 깊었다.

과거사에 대한 철저한 사과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국교를 정상화한다는 것이 국민으로서는 너무도 굴욕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만 머무를 수도 없었다. 앞날이 더 중요했다.

결국 우선 수교를 하고 과거사에 대한 화해는 점차 해나가기로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지도자들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의 국민들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역사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인접국가간의 협력을 희구하는 모순을 범하고 있다.

결국 수교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일 양국의 관계는 그 진정성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일본이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국가와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과거사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들은 ‘대동아공영권’ 구축을 주장하던 과거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침략’ 또는 ‘식민지배’라는 개념을 수용할 수 없다는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도 일본이 대오각성하고 개과천선하기만 마냥 바라고 있을 수도 없다. 그래서 난제인 것이다.

일본으로서는 패전 70주년을 맞는 해이다. 그들이 종전기념일이라고 표현하는 8월 15일에 나올 아베 총리의 발언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일본으로서도 큰 숙제를 떠안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과연 박수를 받을 만한 해답을 내 놓을 수 있을까. 이예 선생의 교린외교 정신을 한일 양국이 같이 생각할 때이다.

강귀일 취재2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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