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핫강(태화강)의 봄철 ‘황어 골회’
태핫강(태화강)의 봄철 ‘황어 골회’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3.15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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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귀근(落葉歸根)의 계절 가을, 낙목한산(落木寒山)의 풍경 겨울, 월백설백천지백(月白雪白天地白)하던 1월, 2월이 꽃을 시샘하며 넘겨준 고양이 하품 같은 나른한 3월이 벌써 중순이다. 삼호대숲 주위 풍경은 어떠할까. 왜가리는 일찌감치 둥우리 지어놓고 허스키한 울음으로 짝을 부른다. 봄꿩은 춘정을 못 견디어 스스로 울어 화를 자초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직박구리, 박새, 딱새는 울음소리가 아침마다 더 높아지며 홍매, 청매는 이미 피었고 벚꽃은 필 날을 기다리고 있다. 5만여 ‘흑깃 무희’ 떼까마귀는 고향으로 돌아갈 그 날까지 화려한 원무, 군무를 아침저녁 변함없이 보여주고 있다. ‘백깃 춤꾼’ 백로는 호사스러운 장식깃으로 백목련 꽃잎으로 피어나고있다.

태화강 하류에도 봄이 왔다. 물닭의 대부분은 이미 터미널을 떠났으며 예매한 무리는 자맥질하여 파래 뜯기 부산하다. 날렵한 몸매 붉은부리갈매기의 그토록 붉디붉은 부리는 이제 점차 퇴색되어 가고 오리 중의 공작이라 불리는 혹부리오리는 오늘도 먹이 찾는 물구나무서기에 여념이 없다.

외황강의 하류도 봄이 오기는 어느 강과 다르지 않다. 가마우지 무리는 한참 여름 해수욕장 파라솔같이 시키지 않아도 양팔 벌려 몸 말리고 있다. 처용암이 백암으로 물들여지는 것은 ‘헬리콥터 맘’인 으악새의 배설물 때문이다.

입암들에도 봄이 성큼 다가왔다. 대문 열면 미풍에 실려 오는 향긋한 쑥 내음이 추억처럼 밀려올 때면 범서의 아버지가 황어를 기다렸던 봄이다. ‘허참, 올 때가 됐는데, 올라올 때가 됐는데 비만 오면 되는데…’ 마치 오일장 보러 간 애미 기다리는 어린자식 발돋움하듯 독백을 한다. 매년 이때쯤 봄비에 풀이 향기롭다는 춘우초방(春雨草芳) 하듯이 봄비가 제법 소리 낼 만큼 오는 날에는 범서 사람들은 방바닥에 가만히 귀 대어 태화강의 자갈 부딪치는 소리를 듣는다.

자갈소리는 기쁨의 소리이자 아버지의 존재를 대신하는 소리이다. 자갈소리는 황어가 산란할 장소를 만드는 소리이며 황어가 올라왔다는 신호이다. 그 소리는 밤새 구들장을 흔들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게 만든다. 아침이면 강은 온통 황어떼가 물장구를 친다. 황어의 회귀는 나이 지긋한 울산 토박이의 향수이다. ‘골회는 숭어도 좋지만 뭐니 뭐니 해도 황어 골회가 최고인 기라. 봄 쑥 냄새가 살포시 나기 시작하면 황어는 이미 대도섬 밑에 헤엄치고 있는 기라. 내일모레 비만 와 바라 바로 올라오지. 온몸이 벌건 기 거짓말 조금 보태서 강이 벌겋타 아이가…’

‘황어 골회(骨膾)’라고 부르게 된 것은 한자에서 알 수 있듯이 황어를 잡아 내장을 제거한 후 통째로 칼로 뼈까지 다져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아마도 울산에서만 통하는 회 방식 중 하나일 것이다. 황어는 산란기인 봄에는 암수 모두 몸의 옆면과 지느러미 일부에 황색의 혼인색을 띠고 있어 황어라 부른다. 황어는 맛이 담백하면서 육질이 단단해 토박이는 뼈째 다져먹는 골회라는 방법으로 발전시켰다. 봄 황어골회 못지않은 별미가 울산에는 또 있다. 바로 가을 ‘참게 수제비’다. 참게는 양다리에 털이 보쏭뽀송한 모습이 앙증스럽다. 참게는 해수혈(蟹隨穴) 하듯이 구멍을 따른다. 지금도 태화강 갈대밭에서 간혹 관찰된다. 가을 참게는 살이 올라 갈대밭을 논 갈듯 기어 다니는데 울산 토박이들은 독특한 수제비를 즐겼다. 참게를 잡아 절구통에 넣어서 차지게 찧은 다음 밀가루에 물 대신 버물어 수제비로 떠서 끓이면, 그 맛이 기가 찬다는 것이다. 귀하고 맛있는 참게의 이용도를 극대화시킨 사례라 할 수 있다.

태화강 갈대밭 참게는 개개비와 공존하며 태화강을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 강은 죽은 자나 산 자가 건너야 하는 곳이지만 산 자를 먹여 살리는 곳이기도 하다. 봄철 울산을 찾는 백로와 황어는 모두 친정을 찾는 귀한 딸들이다. 백로는 삼호대숲에서, 황어는 태화강 자갈밭에서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른다. 울산은 친정이자 외갓집인 셈이다.

울산만에 모여든 황어떼는 아랏트(alert)에서 명령을 기다리는 전투기의 출격처럼 봄비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다행이 이번 주 수요일에는 봄비가 제법 실하게 온단다. 교량공사로 임시 설치한 오탁방지막부터 한시적으로 걷어 올려야 하겠다. 2010년경부터 다시 매년 태화강 상류로 찾아오는 황어는 이미 울산광역시 보호야생생물로 지정되었다. 한때 태핫강(태화강) 봄철 ‘황어 골회’ 한 접시에 이웃 인심이 복사꽃같이 발그레하던 마을 풍경도 이제 기노(耆老)의 구장(鳩杖)처럼 추억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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