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님들의 배지(badge)
의원님들의 배지(badge)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3.15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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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배지의 재료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 필시 제대로 아는 이는 드물지 싶다. 뒤적뒤적 알아보았더니 색은 금(金)이지만 속살의 99%는 은(銀)이라는 답이 나왔다. 그래도 그 값어치는 고만한 양의 금 무게에 감히 견줄 수 있으랴. 말 나온 김에 국회의원 배지의 변천사나 한 번 훑어보는 것도 무익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해방 후 얼마 동안은 한글로 ‘국’자를 새겼다고 했다. 그러던 것이 ‘나라’라는 뜻의 한자 ‘國’으로 둔갑했다. 이유는 그럴 듯하고 이해해줄 만은 만하다. ‘국’자를 거꾸로 뒤집어 놓으면 한글 ‘논’자로 보이고 이는 ‘논다’는 의미로 잘못 해석될 수도 있다. 그래서 다수결로 뜻을 모아 바꾸었다는 설(說)이 있다. 해방 직후라면 ‘놀고 있네’라는 말은 정녕 없었을 것이니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여겨도 좋을 것인가.

여하간 한자로 ‘國’이라고 쓴 국회의원 배지와 국회 기(旗)는 우여곡절 끝에 다시 한글로 쓴 ‘국회’로 거듭 태어난다. 지난해 5월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부터다. 이날 언론은 “여야는 본회의에서 국회 문양을 기존 한자에서 한글로 변경하는 내용의 ‘국회기 및 국회배지 등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재석 191인 중 찬성 160인, 반대 16인, 기권 15인으로 통과시켰다”고 보도했다.

이유는 간단명료하다. 규칙 개정안의 제안이유에 나와 있다. “이번 국회상징의 한글화는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를 상징하는 국회기, 국회의원배지 등의 문양이 한자(國)로 되어있어 한글을 주로 사용하는 현실에 맞지 않고, 기존 국회의원배지 안의 ‘國’자가 ‘或(혹)’자로 오인될 수 있다는 지적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공공기관 등의 공문서는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는 국어기본법을 존중하는 취지도 있다.”

참고로 2005년 17대 국회가 제정한 ‘국어기본법’은 ‘공공기관 등의 공문서는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고 못 박고 있다. 또 제안이유에서 “‘國’자가 ‘或(혹)’자로 오인될 수 있다”라고 한 지적은 어찌 보면 탁월한 구석이 있다. 국회가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장으로 비쳐지는 것을 저어한 탓은 아니었을까?

돌이켜보면 ‘국회상징의 한글화’는 우리의 말과 글을 사랑하는 많은 분들의 숨은 노력 덕분이기도 하다. ‘배지(badge)’를 순우리말 ‘보람’으로 부르는 이대로 선생(당시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은 2009년 9월 하순쯤 ‘국회의원 보람은 한글로 써야 옳다’라는 글에서 ‘한글은 대한민국의 상징, 한자는 중국의 상징’이라며 한글로 쓰기를 촉구했었다. 그는 “대한민국과 정부, 법원의 휘장은 우리 글자인 한글인데 국회의 휘장은 한자 ‘國’으로 쓰고 있으니 한심스럽다”고 꼬집기도 했다.

여하간 대한민국 국회의 한글 쓰기 물결이 지방의회로 번지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다. 지난 1월 30일 ‘議’로 되어 있는 의원 배지를 한글 ‘의회’로 바꾸기로 뜻을 모은 지방의회는 2010년 6대 의회 때부터 한글 명패를 사용해온 경기도 오산시의회였다. 다소 늦은 감이야 있지만 우리 울산중구의회는 지난 9일 의원총회에서 한자 ‘議’로 새겨진 의원 배지와 의회 기를 모두 한글 ‘의회’로 바꾸기로 했으니 한 발 더 앞선 게 분명하다. 운영위원회 의결(11일)은 이미 거쳤고 2차 본회의 의결(18일)만 남겨두고 있다.

두 기초의회의 개정규칙 시행 시점은 똑같이 7월 1일. 그러나 의원 배지와 의회 기의 한자를 모두 한글로 바꾸는 지방의회는 광역·기초를 통틀어 울산중구의회가 맨 처음이지 싶다. 한글을 ‘목숨’처럼 지키신 외솔 최현배 선생의 고향이자 ‘한글도시’로 거듭난 울산시의 시민으로서 큰 자부심을 가져도 좋으리라. 울산시의회와 다른 구·군의회의 분발도 기대해 본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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