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이란 이름으로
혁신이란 이름으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3.08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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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 혁신도시 내의 공기업 한 곳을 방문했다. 혁신도시란 노무현 정부 시절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을 통해서 지역의 균형발전을 이루기 위한 계획도시라고 들었다.

산은 산업수도답게 지역의 특수성에 맞는 10개의 공공기관이 이전을 완료했거나 진행 중에 있다고 한다. 불과 몇 년 새 동그만 뒷동산 같던 함월산 숲 자락을 잘라낸 자리엔 기하학적인 건축물들이 우뚝우뚝 솟기 시작했다.

솔직한 심정으로 뉴스나 지면을 통해 국민의 혈세를 축내는 공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있었던 터라 올라가는 건물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 적도 있었다.

내가 방문한 회사는 신사옥 전면이 유리창으로 되어 있어 채광효과와 전기절약을 고려한 에너지 공기업다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유리창 너머로 따스한 빛이 쏟아지는 사무실은 모든 업무가 클라우드 시스템으로 작동되는 스마트 오피스라서 컴퓨터 본체는 물론이고 직원들의 책상위엔 전화나 책꽂이, 종이문서도 보이지 않았다. 부서 간 소통을 위해 칸막이를 없앤 사무실은 익히 보아왔던 사무실과 많이 달랐다. 1층 로비에 마련된 카페나 쉼터, 10층에 마련된 북카페는 직원들의 창의적이고 효율적인 업무환경을 위해 마련되었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비상구를 이용해서 식당을 내려가는 계단 한 칸 한 칸마다 칼로리 소모량까지 일일이 기록해 놓았다.

건물 외부는 직원들의 체력단련을 위한 공간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에게 제공할 산책로까지 갖추어 놓았다. 이곳뿐만 아니라 인근에 있는 건물들의 외관만 봐도 공기업은 세간에서 말하는 ‘신의 직장’이라 불리기에 충분해 보였다.

“짐승의 가죽에서 털을 뽑아 다듬은 것을 ‘혁’이라 하며 ‘가죽 ‘혁’(革)자는 사냥한 짐승의 날가죽을 펴놓고 털을 뽑는 모양을 본뜬 글자다. 혁신(革新)의 한문은 털이 뽑힌 가죽은 다른 것으로 새롭게 변화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혁신이란 어떤 기관이 지역을 옮기고 낡은 건물에서 새 건물로 이사를 했다고 해서 혁신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 중심에 사람이 있음을 말해 무엇 하랴. 양질의 최첨단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활용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혁신의 기본바탕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 아닌가. 아무리 좋은 환경에서 일을 해도 가족이 함께 살면서 식탁에 둘러 앉아 집 밥을 먹고 출근하는 평범한 일상이 나날이 새로워지는 혁신의 근본일 테다.

이전을 마친 공공기관들은 근무하는 직원 가족들의 이주율이 저조하단다. 혁신도시의 도로며 기반시설들이 부실공사로 얼룩진 마당에 공공기관들이 앞 다투어 주민들과 소통하겠다는 야심찬 말들마저 공허하게 들렸다면 지나친 기우일까.

혁신도시가 멋들어지게 지어진 공공건물과 일인가구형 원룸으로 둘러싸인 베드타운이 되지 않을까하는 염려는 그야말로 염려에 그쳤으면 좋겠다, 도시의 흥망성쇠는 인구 유입이 좌우한다. 잃어버린 함월산 숲은 짐승의 가죽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가죽이 명품 옷이나 가방이 되고 구두가 되듯, 혁신도시의 성공은 인구가 늘면서 일자리가 생기고 소득으로 연결되어서 그것이 곧 지역의 균형발전으로 이어져야한다. 소박하고 순진한 주부의 바람인지 모르나 혁신이란 이름 아래 주말 부부나 기러기 아빠라는 기형가족이 더 이상 생겨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견학을 마칠 즈음 안내하는 직원이 자랑삼아 했던 말이 떠오른다. 일하는 환경이 너무 좋아서 직원들이 퇴근을 늦게 한다고. 혹시 그들이 흔히 말하는 기러기 아빠는 아닐 거라 믿는다.

<박종임 수필가/나래문학 동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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