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대종 각시붕어
깃대종 각시붕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3.04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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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태화강의 깃대종 각시붕어입니다. 깃대종이 뭐냐고요?

1993년 국제연합 환경계획(the United Nations Environment Progr amme)이란 곳에서 우리가 태화강에서는 가장 중요하고 보호할 가치가 있다고 정했나 봐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 각 지역마다 생태계 보존을 위해 그 지역 환경단체의 도움을 받아 한 지역의 생태적, 지리적, 문화적 특성을 반영하는 상징적인 동식물을 정했겠죠.

시베리아의 깃대종은 무엇으로 정했을까요?

호랑이입니다. 만약 시베리아에 호랑이가 살 수 없다면 그 곳의 환경이 어떨까요? 아마 인간의 개발에 의해 자연환경이 많이 파괴되었겠죠.

덕유산의 깃대종은 뭘까요?

반딧불이입니다. 반딧불이는 대기오염이 거의 되지 않은 청정지역에서 살죠. 만약 별이 반짝이는 덕유산의 밤하늘 아래에서 반딧불이가 사라진다면 덕유산의 환경은 어떨까요?

아 깃대종 말한다고 제 소개를 안했군요. 왜 각시붕어란 이름이 붙었냐고요?

그야 각시처럼 예쁘고 생기기는 납작하지만 붕어처럼 생겨서죠. 그리고 중국도 일본도 아닌 오직 한국에서만 사는 한국고유종이지요.

아무튼 우리는 태화강에서 가장 중요하고 상징적인 깃대종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가족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삼호다리 아래에서도 살고, 점촌교 밑에서도 살고, 망성마을 앞에서도 살았죠.

그 중에서도 삼호다리 밑에는 참 살기 좋은 동네였습니다. 모래펄이 잘 조성되고 물살도 세지 않아 수초도 많고 민물조개도 많이 살았죠.

언니, 오빠들은 결혼적령기가 되면 말조개에 신혼방을 차렸지요. 언니들이 기다란 산란관을 조개의 출수공에 집어넣고 산란을 하면 오빠들은 재빨리 정자를 입수공에 뿌렸죠. 한 달쯤 지나면 어린 치어들이 제법 자라 말조개에서 기지개를 켜고 나온답니다.

가까운 이웃에는 우리의 사촌인 큰납자루와 납지리, 흰줄납줄개 가족도 함께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청천벽력(靑天霹靂)같은 일이 마을에 일어났습니다. 2003년쯤인가요. 태화강 환경개선 사업이란 이름으로 태화강 화천정비 사업이 시작되었죠.

귀를 찢는 듯한 기계음 소리와 함께 포클레인이 온 동네를 파헤쳤습니다. 마을은 온통 흙탕물투성이가 되었습니다.

말조개도 사라지고 수초도 사라졌습니다. 동네 각시붕어들은 숨을 쉴 수가 없어 하나 둘 떠나고 남아 있는 식구들도 병들어 죽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몇몇 힘센 친구들은 황급히 도망쳐 강가에서 풀잎을 물고 숨을 헐떡이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센 물살이 몰려왔습니다. 우리는 떠내려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며칠이 지났습니다. 깊어진 물속에서 입이 큰 배스라는 침략자가 나타났습니다. 배스는 큰 입으로 친구들을 냉큼냉큼 먹어 치웠습니다.

볼에 파란 큰 점을 단 블루길도 나타났습니다. 블루길은 눈을 부라리며 우리들 곁으로 다가와 친구들을 모조리 잡아먹었습니다.

나는 죽을힘을 다해 도망쳤습니다. 산 넘고 물 건너 도망친 곳이 척과천이었죠.

이곳은 너무나 평온한 마을입니다. 모래펄도, 수초도 많이 사는 정수역입니다. 이웃에는 잔가시고기도 삽니다. 그리고 송사리와 우리의 사촌인 흰줄납줄개도 삽니다.

나는 여기에서 새로운 친구를 만나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죽은 이웃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잠이 오지 않습니다.

나는 늘 꿈을 꿉니다. 우리 부모님의 고향이자 나의 고향인 삼호다리 밑에서 사는 꿈을!

<조상제 강북교육지원청/교수학습지원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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