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2.22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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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을 흔히 ‘자신과의 끝없는 싸움이자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스포츠’라고 한다. 자신과의 끝없는 싸움을 해야 하는 것이 어디 마라톤뿐이랴.

며칠 전 개최된 제12회 밀양아리랑 마라톤대회에 참가했다. 오랜만에 뛰기에 부담이 적은 10km를 달렸다. 내가 주로 달리는 종목은 하프인데 아무런 연습도 없이 하프를 달리는 것은 무리일 것 같아 10km를 뛰게 되었다.

대회일은 생각보다 추웠지만 달리고 싶은 참가자들의 열기로 운동장은 뜨거웠다. 앞에선 참가자들이 출발 신호에 맞추어 힘차게 ‘파이팅’을 하고 동시에 출발을 한다. 나도 그 물결에 휩쓸린다. 동시에 결승점을 통과할 때까지 나의 몸과 정신은 각자 분리가 된다. 두 다리는 왼발이 앞으로 나가면 오른 발도 이에 질세라 얼른 앞으로 내밀어 두 발이 서로 먼저 앞으로 내밀기를 하면서 간다.

그 틈을 이용하여 나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한다. 우선 이번 설에는 두 아이들이 외국에 있어 처음으로 설을 함께 보내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 서운한 마음을 먼저 되씹어 보니 앞으로도 종종 자식들과 언제나 명절을 같이 보낼 수는 없을 것이므로 그에 대한 적응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본다.

2km쯤 달리자 벌써 호흡이 가빠져 온다. 이는 어쩔 수가 없다. 그동안 한 번도 달리기 연습을 하지 않아 자업자득(自業自得)이므로 참으며 달릴 수밖에 다른 대책이 없다. 그런 생각을 하는 중에도 두 다리는 앞으로만 달리고 있다.

세상에 공짜도 없지만 자신의 노력없이 이룰 수 있는 것 또한 없다. 지금 달리는 것이 조금이라도 수월하기 위해서는 자주 달리기를 해야만 했지만 달리기는 언제나 힘들었다. 그래서 가끔 대회에 출전하여 달리는 것이 전부이다. 달릴 때마다 힘이 들어 게으름을 피우지만, 그 대신 탁구와 테니스, 자전거를 타는 것을 즐기는 편이라 자주 운동을 한다.

많은 생각을 하면서 달리다 보니 어느새 반환점이 눈앞에 보인다. 나의 삶도 반환점을 지난지가 꽤 되었지만 달리다가 만나는 반환점은 언제나 반갑다. 이제는 온 만큼만 달리면 되고, 아무리 힘든 일도 언젠가는 그 끝이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환점을 돌때는 다시 힘이 나게 된다.

달리는 틈틈이 마실 물과 달리는 이들을 격려하기 위해 지역 주민들이 나와 신나게 북을 쳐 주고, 하이파이브를 하자고 손을 내미는 이들이 있어 가쁜 호흡을 조절하고 두 발에 힘을 준다.

8km 입간판이 보인다. 길가에 준비된 음료수가 먹고 싶어지고 달리는 것을 잠깐 멈추고 쉬고 싶다. 서서히 체력이 고갈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결승점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으로 오르막을 달린다.

결국, 출발점인 결승점의 시계는 1시간 11분을 지나고 있었다. 그렇게 뛰면서 많은 생각을 정리해 보는 시간도 끝이 났다. 게으름으로 인해 뛰는 것이 힘은 들었지만 나 자신의 체력을 테스트해 보았다. 그렇게 달리기는 끝이 났다.

파스칼은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라고 했다. 비록 내 삶의 속도가 늦을지 몰라도 똑바른 길을 가는지 달리기를 하면서 내가 보고 있는 나침반이 제대로 작동을 하는지 늘 점검을 한다. 그래야만 가야할 방향을 제대로 잡고 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조금 늦어지면 어떠리. 제대로만 간다면 말이다. 제대로 가는 지를 점검해 보기 위해 조만간 길을 나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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