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회정(晩悔亭) 기슭을 거닐며
만회정(晩悔亭) 기슭을 거닐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2.11 20: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태화루에서 삼호교 쪽으로 강변 산책길을 따라 약 삼사 킬로쯤 걷다 보면 강가에 나지막한 구릉이 하나 나오고 그 위에는 아담한 정자가 하나 서 있다. 그 구릉은 마치 자라목처럼 태화강을 향해 내밀고 있는 형상이라 해서 ‘자라 오’(鰲) 자를 써 오산(鰲山)이라 불리는데, 그 구릉 위의 정자에는 만회정(晩悔亭)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원래의 만회정(晩悔亭)은 조선 중기 박취문이라는 분이 낙향하여 세운 정자로 태화강 강변에 자리 잡고 1800년대까지 이어 오다 조선 말기에 소실되었다 한다. 지금의 만회정(晩悔亭)은 근래에 태화강 대숲공원을 조성할 때 울산시에서 새로 지은 것이다.

태화강변을 걷다가 우연히 만난 그 정자를 요즘 나는 자주 찾는다. 태화루 쪽에서 걸어가다 보면 꼭 한숨 쉬어갈 만한 자리이기도 하고, 정자에서 바라보는 경관도 강이 시원하게 내다보일 뿐 아니라 주변의 대숲이 강 경치와 꽤 잘 어울려 편안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나는 무엇보다도 만회정(晩悔亭)이라는 그 정자의 이름에 마음이 끌린다. 그 이름은 아마도 정자를 지은 박취문이라는 분의 호를 따서 지은 것이겠지만, 나는 만회정(晩悔亭)이라는 이름을 내 방식으로 읽어 본다. ‘늦게 깨우친 자의 쉼터’라는 뜻일까? 혹은 ‘때늦은 후회를 다스리는 곳’이 될 수도 있으리라. 그렇게 새기고 보니 꼭 내 집처럼 그 정자에 몸을 맡기고 쉬고 싶도록 정이 간다. 오십 줄 넘고부터는 인생살이가 때늦은 후회로 점철되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꼭 누군가가 내 마음을 헤아려 지은 이름 같아 나는 그곳이 무척 정겹다.

국어 교사로서 언어를 다루는 일에 평생을 묻어 온 나는 근래에 들어 언어의 속성이 어쩌면 빛과 유사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어둠 속에 묻혀 모습이 드러나지 않던 사물이 빛을 받으면 그 모습이 드러나듯이 세상은 언어의 해석이 붙어서야 비로소 그 의미가 드러나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언어적 사고란 창조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성찰의 영역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렇다. 뒤늦은 깨달음이란 바로 언어의 속성인 것이다. 강변을 걷다가 뒤를 돌아다보면 지나온 길이 새삼 정겹게 보이곤 한다. 그 자리를 지나올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돌아다보면 여실한 모습으로 새롭게 다가오는 것이다. 세상은 늘 그렇다. 그 때는 몰랐던 것을 뒤늦게 돌아다보고서야 깨닫는 애잔한 마음……. 모든 문학 작품엔 본질적으로 짠한 애상이 묻어 있다는 걸 깨달은 것도 요즘 들어서다.

언어가 세상의 실상을 결코 온전히 알려줄 수 없듯이 빛 또한 사물의 실상을 결코 그대로 드러내지 못한다. 휴일 오후 느지막이 만회정을 뒤로 하고 태화루 쪽으로 강변을 걷다 보면 오후 세 시쯤 서북 방향의 강물은 마치 잉크를 풀어놓은 듯이 새파랗게 보이곤 한다. 오후 한때 지구가 혼자 벌이는 화려한 빛 장난이다. 그 푸른 빛깔이 결코 실상이 아니란 걸 알지만 한 순간 망막에 와 닿는 청신한 코발트빛은 그렇게 신선할 수가 없다. 언어의 유희인 문학이 그 현란한 장난에 즐겨 젖어드는 자에게 기쁨을 안겨 주는 것과 같은 이치일까. 저 황홀한 지구의 빛 장난을 그저 즐기고 젖어들면 그만이지 굳이 그 물 떠서 잉크 빛을 확인해서 무엇 하랴.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이 저물어서야 비상의 날개를 편다던 헤겔의 말은 흔히 철학적 사고의 성찰적 성격을 지적한 말로 이해된다. 젊은 시절 나는 이 말이 싫었다. 앞날을 내다보지 못하고 기껏 지나간 시대를 반추하고 성찰한다는 것이 무슨 가치가 있다는 말인가. 실용성 없는 진중함이 무슨 혜안이랴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살다 보니 삶의 소중한 편린들은 언제나 때늦은 후회였고, 늦게 찾아오는 저 쓸쓸한 깨달음들이었다. 이제 저 편안한 강의 물빛처럼 보이는 대로 받아들이며 살고 싶다. 삶이 좀 쓸쓸하면 쓸쓸한 대로 의연히 살려 한다. 저 만회정(晩悔亭) 기슭 오르내리며 때늦은 후회도 하나둘 곱씹으면서.

서상호 효정고 교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