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는 여자 아이 또는 젊은 여자를 대접해서 부르는 말이다(이희승편 국어대사전. 1961). 아가씨와 비슷한 말로 ‘아씨’가 있다. 같은 사전에, 아씨는 며느리 보기 전의 젊은 부인에 대하여, 그 아래 계급의 사람이 이르는 말로 나와 있다. 아가씨는 ‘동백아가씨’가 연상될 만큼 이미자씨의 노래로 더 유명해졌는데 영화의 내용에서 주인공 시골 처녀 아가씨는 서울에서 내려온 대학생에게 순정을 바쳤는데 버림 받고 ‘동백빠아’에서 여급으로 일을 하여 ‘동백아가씨’불렸던 데서 유래하는 슬픈 내용의 주인공이다.
‘아씨’도 1970년부터 1971년 사이에 공전의 히트를 쳤던, 지금은 없어진 TBC 방송국의 드라마 제목이었다. 이 드라마가 방영되는 시간에 어른 들이 화장실에도 가지 않고 참고 있다가 방송이 끝나고 나서야 각 가정에서 화장실에 가기 때문에 서울의 수도국 수압이 떨어질 정도였다고 할 만큼 유명했다. 추측컨대 이 말은 과장된 것 같다.
동백 ‘아가씨’가 노래의 제목으로 나오고 ‘아씨’가 드라마의 제목으로 선택된 것에는 낱말 자체의 울림과 아름다움이 펼쳐지고 풍겨 나오기 때문이다. 얼마 안 되는 진짜 우리말이다. 전직 군에서 중장(별이 세 개)까지 될 만큼 평생을 전쟁이라는 체제 속에서 보낸 사람이 2015년 현재 아가씨라는 낱말이 연상 시키는 바람직스럽지 못한 술집아가씨를 생각하고 ‘하사관’을 굳이 ‘하사관 아가씨’라고 했을 까닭이 없다. 이것을 슬쩍 못 모르는 척 지나치며 ‘어디다가 군 하사관을 아가씨라고 부르느냐?’고 아우성을 치면, 그런 지적을 찾아 확대시키는 사람의 숨겨놓은 정치적 의도를 탐색하고 싶어진다.
폐일언하고, ‘아가씨’를 술집 작부만을 연상 시켜 여자 군인 하사관을 하사관 아가씨라고 불렀대서 혼 줄을 내면 전국의 술집 여자 종업원들은 ‘우리가 동백 아가씨의 원조이니까 술집에서 허풍 떨고 외상 먹고, 지금까지 갚지 않으며 동백아가씨와 바람 피웠던 정치꾼들 모두 폭로하겠다.’고 종로(鐘路)통으로 나올 것이다. 동백 아가씨 영화나 아씨 드라마에서 그려진 여자 주인공의 전형적인 우리나라 어머니의 애환(哀歡)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런 어려움을 이기고 우리를 키워낸 다른 어머니들도 아가씨로 불렸고 아씨로 불렸던 사실은 알고 있어야 한다. 갓 시집 온 새색시가 시집의 나이 어린 시누이를 포함한 시집의 다른 처녀들을 ‘아가씨’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