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
아가씨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2.10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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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가느다란) 기계국수 한 웅큼을 멸치국물에 풀어놓고, 그 위에 깨소금 조금 흩트리고, 고춧가루 새끼손가락만큼 올려놓고 3천원 받는 종로 2가의 실비(?)집에 어제 갔었다. 디긋자(ㄷ) 모양의 선반식 식탁의 둘레에 10여명의 국수 마니아들, 20대부터 7, 80대까지 빙 둘러 앉아 점심 요기를 하는데 60대 초반의 주인아주머니, 사실은 할머니가 앞자리의 한 여성고객의 어떤 요청에,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이 여성을 굳이 ‘처녀’ 고객이라고 하지 않겠다. ‘아가씨는 다음 차례이니까 조금만 기다려.’ 하지 않는가? 마침 기다리고 있던 필자가 심심해서 끼어들었다. ‘사장님, 방송 안 보셨어요?’ ‘왜요?’ ‘지금 손님한테 아가씨라고 하셨어요. 안 돼요. 얼마 전에 국회의원 한 사람이 여자 군인을 ‘하사관 아가씨’라고 말했다가 곤욕을 치렀어요.’ ‘아가씨를 아가씨라고 불렀는데 곤욕 치를 일이 뭐 있어요?’ ‘사장-님. TV나 신문을 안 보셨어요?’ ‘아이고, 나는 신문 볼 줄도 모르고, TV는 보는데요, 뉴스도 안 보고 애들 키우는 것만 보아요. 고 애들은 헛소리를 안 하잖아요? 멸치국수도 옛날 맛 그대로 거짓말 안 해요.’ 그러면서 국수가 다되었다.

‘아가씨’는 여자 아이 또는 젊은 여자를 대접해서 부르는 말이다(이희승편 국어대사전. 1961). 아가씨와 비슷한 말로 ‘아씨’가 있다. 같은 사전에, 아씨는 며느리 보기 전의 젊은 부인에 대하여, 그 아래 계급의 사람이 이르는 말로 나와 있다. 아가씨는 ‘동백아가씨’가 연상될 만큼 이미자씨의 노래로 더 유명해졌는데 영화의 내용에서 주인공 시골 처녀 아가씨는 서울에서 내려온 대학생에게 순정을 바쳤는데 버림 받고 ‘동백빠아’에서 여급으로 일을 하여 ‘동백아가씨’불렸던 데서 유래하는 슬픈 내용의 주인공이다.

‘아씨’도 1970년부터 1971년 사이에 공전의 히트를 쳤던, 지금은 없어진 TBC 방송국의 드라마 제목이었다. 이 드라마가 방영되는 시간에 어른 들이 화장실에도 가지 않고 참고 있다가 방송이 끝나고 나서야 각 가정에서 화장실에 가기 때문에 서울의 수도국 수압이 떨어질 정도였다고 할 만큼 유명했다. 추측컨대 이 말은 과장된 것 같다.

동백 ‘아가씨’가 노래의 제목으로 나오고 ‘아씨’가 드라마의 제목으로 선택된 것에는 낱말 자체의 울림과 아름다움이 펼쳐지고 풍겨 나오기 때문이다. 얼마 안 되는 진짜 우리말이다. 전직 군에서 중장(별이 세 개)까지 될 만큼 평생을 전쟁이라는 체제 속에서 보낸 사람이 2015년 현재 아가씨라는 낱말이 연상 시키는 바람직스럽지 못한 술집아가씨를 생각하고 ‘하사관’을 굳이 ‘하사관 아가씨’라고 했을 까닭이 없다. 이것을 슬쩍 못 모르는 척 지나치며 ‘어디다가 군 하사관을 아가씨라고 부르느냐?’고 아우성을 치면, 그런 지적을 찾아 확대시키는 사람의 숨겨놓은 정치적 의도를 탐색하고 싶어진다.

폐일언하고, ‘아가씨’를 술집 작부만을 연상 시켜 여자 군인 하사관을 하사관 아가씨라고 불렀대서 혼 줄을 내면 전국의 술집 여자 종업원들은 ‘우리가 동백 아가씨의 원조이니까 술집에서 허풍 떨고 외상 먹고, 지금까지 갚지 않으며 동백아가씨와 바람 피웠던 정치꾼들 모두 폭로하겠다.’고 종로(鐘路)통으로 나올 것이다. 동백 아가씨 영화나 아씨 드라마에서 그려진 여자 주인공의 전형적인 우리나라 어머니의 애환(哀歡)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런 어려움을 이기고 우리를 키워낸 다른 어머니들도 아가씨로 불렸고 아씨로 불렸던 사실은 알고 있어야 한다. 갓 시집 온 새색시가 시집의 나이 어린 시누이를 포함한 시집의 다른 처녀들을 ‘아가씨’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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