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넘어서서
경계를 넘어서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2.09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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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제철의 신화를 일궈냈던 박태준 회장이 지병으로 별세하자 모 일간지 기자는 그를 ‘경계를 넘어선 사람’이라며 칭송했다. 그 기사처럼 박 회장은 입지전적인 인물임에 틀림없었다.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포항제철이라는 유(有)를 이뤄냈으니 개인의 영광이요 민족의 축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형산강 지류를 거슬러 올라가 포항의 관문을 지나면 맨주먹으로 산업화의 기초를 닦았던 불굴의 철강 왕이 떠오른다. 그런데 박 회장에 관한 재미난 일화가 있다. 박 회장은 목욕탕을 지어 당시 사람들의 정서에 파격을 시도했다. 매일 씻고 목욕하는 것이 사치라고 인식하던 시절, 그의 발상의 전환은 예상외의 결과를 가져왔다. 깨끗하게 목욕한 사람이 더러운 생각을 할 수 없고 혈액순환이 잘 돼 몸이 가벼우니 일에 능률이 오를 수밖에 없었다.

이랜드 그룹의 박성수 회장은 불과 500만원의 자본금으로 출발해 재계 서열 37위의 자리를 차지할 만큼 그 동안 성장과 발전을 거듭해왔다. 그는 명문대를 다니다 근육무력증이라는 희귀병을 앓게 되었다고 한다. 수년 간 자신의 몸 하나 추스르지 못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처음에는 하늘을 향해 원망도 했고 자책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이라는 시계는 냉정하게 돌아갔다. 현실을 인식한 순간 그는 불평 대신 누워있는 자리에서라도 자신이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조간신문의 탐독이 그것이었다.

누워 있는 병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주야장창 신문을 읽으며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신문기사를 통해 인생을 배우고 경영학을 배우게 됐다. 나중에 병마를 털고 일어난 그는 28세에 이화여대 앞에서 잉글랜드라는 자그마한 보세의류가게를 시작했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나는 동안 그 가게는 발전을 거듭하여 우리 앞에 이랜드 그룹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 있다. 그렇게 좌절을 겪고 일어났기 때문에 그에겐 남다른 점이 있다. 그는 정직한 경영으로 부를 쌓은 뒤 기부문화를 비롯한 자선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쳐 사회사업가로서의 명성도 자자하다.

필자가 굿뉴스 울산이라는 신문을 창간하게 된 것은 우연한 계기에서 였다. 30여평 정도의 조그만 개척교회를 꾸려 나가는 입장에서 신문을 발행하다보니 질시도 많이 받았고 스스로에 대한 의문에 사로잡힌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우연한 기회에 필자의 글이 대구지역 기독신문에 실리게 되었다. 그것이 계기가 돼 ‘우리도 울산에 기독교 신문을 만들어 보자’며 그 신문에 울산 지면을 만들었다. 보수를 받고 일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지대를 지불하며 그 일을 감당했으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뒤 독자적인 특수 격주간지를 발행해 오늘에 이르게 됐다.

매월 적지 않은 비용을 투입해 취재를 하고 제작·배부에 들어갔으니 개척교회 현실에서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대구지역의 기독교 신문의 이름을 들고 울산에서 활동이 쉽기만 했겠는가. 매월 500여부의 신문을 받았고, 울산지면은 두 면을 따로 할애 받아 4000부를 타블로이드 크기로 인쇄했다. 그랬더니 울산지면 4면을 따로 만들자는 얘기가 나왔다. 그래서 힘겹고 버거운 일이었지만 2년전 창간하게 되었으며, 전면컬러 12면으로 지령 12호 10만여부를 발행하게 됐다. “경계를 넘어서라”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말은 기실 멋있게 들리지만 실천은 매우 어렵다. 그래도 첨병처럼 앞서 나가야한다. 누군가는 꼭 감당해야 할 몫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박태준 고 포철회장, 박성수 이랜드 회장이 그랬듯이 지금의 시대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이금희 굿뉴스울산 발행인/언약의 교회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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