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의 위기
이완구의 위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2.08 20: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준비된 국무총리 후보자’ 이완구 국회의원이 코너에 몰렸다. 자신과 아들의 병역문제, 부동산투기 의혹에 언론외압설까지 겹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결정타는 소위 ‘이완구 녹취록’이 날렸고 이 한 방이 그를 낙마(落馬) 위기로 몰아넣었다. 뛰어난 정치력, 기대되던 국정운영능력 도 이 한 방이 잠재우고 말았다.

대화 내용이 그의 언론관을 반영한 탓일까, 언론매체들이 연일 시끄럽다. 우군으로 여기던 언론계 인사들마저 ‘난 아니야’라며 손사래 치기 바쁘다. 사면초가, 진퇴양난이란 말 속에 그의 곤혹스러운 심경이 투영돼 있을 것이다.

녹취록을 터뜨린 이는 야당 소속 동료 국회의원이었다. 총리 후보자의 해명을 빌리면, 청문회를 앞두고 ‘평소 친하게 지내던’ 기자들과 점식식사 같이하며 ‘격의 없는 사적 대화’를 나눈 게 전부다. 그런데도 까발려졌고 만신창이가 됐다. 도대체 누가 몰래 녹취했고, 누가 야속하게 일러바친 것일까.

어쨌든 그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꼴이 됐다. 아니 스스로 발등 찍은 격이 됐다. 무용담처럼 꺼낸 몇 마디 말이 화근이었다. “야, 우선 저 패널부터 막아 인마, 빨리, 시간 없어…” 이때 ‘인마’는 욕이 아니라 대단한 친근감의 표시다. 모 방송사 시사평론 코너의 일부 패널이 마음에 안 든 때문이었을까.

이 발언이 지난 7일 MBN(매일방송) ‘아침의 창’에서 입방아에 올랐다. 남성 패널 1명이 ‘나를 두고 한 말”이라며 농담조로 말했다. 여성 패널 1명이 “(칭찬·격려 일색의) ‘주례사 평론’이나 하라는 건가”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패널 4명 모두 쓴 웃음을 짓고 마는 것이었다. 녹취록에는 ‘인사 개입’ 오해 받기에 딱 좋은 이런 말도 있었다. “윗사람들하고 다…관계가 있어요. 어이 이 국장, 걔 안 돼. 해 안 해? 야, 김 부장 걔 안 돼. 지가 죽는 것도 몰라요. 어떻게 죽는지도 몰라.”

‘절친’ 사이로 보이는 언론사 간부 몇몇에게 전화로 건넨 말을 직위가 그보다 아래인 기자들과 마주앉은 밥상 앞에서, 그것도 거리낌 없이 털어놨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이 대목 풀이로는 야당 수석부대변인 논평이 제격일 것 같다. “이 후보자가 언론인들을 상대로 협박에 가까운 넋두리를 늘어놓은 것을 본 국민이 혀를 차고 있다. 아무리 급하다고 할 말 못할 말을 가리지 못한다면 총리 후보자로서 부적격이다.”

반면 동정적인 시각도 없지는 않다. 일종의 ‘과시성 발언’이라는 두둔이다. 또 그를 매우 아껴온 것으로 보이는 한 블로거(‘하얀비’)는 이번 발언 파동을 ‘대형사고’라며 이런 말을 남겼다. ‘이완구는 순진, KBS기자는 살쾡이, 새정치는 야비’란 제목의 글에서 이 블로거는 “무난히 청문회를 마칠 수 있으려니 했더니 이건 또 무슨 날벼락인가”라고 안타까워했다.

여하간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는 “공직 후보자로서 경솔했다”고 잘못을 시인했다. “대오각성하는 마음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보다 더 진중한 몸가짐’도 약속했다. “다소 거칠고 정제되지 못한 표현을 사용한 것은 저의 부덕의 소치”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럼에도 한 패널은 작심한 듯 쓴소리를 던졌다. “혀를 잘 다스려야 자신의 앞날을 보장받을 수 있는 법이야.” ‘세 치 혀가 다섯 자 몸을 망친다’는 속담을 연상시켰다.

우리 속담에는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 ‘말 한마디 했다가 본전도 못 찾는다’는 말도 있다. 말 한마디는 천 냥 빚을 갚게 할 수도, 달리던 말에서 떨어지게 할 수도 있다는 것, 만고불변의 진리라는 느낌이 든다.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