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문제라면 우리가 또 주목할 만한 일이 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올라간다’던가. 이상스럽게도 울산의 영재들이 모여든다는 ‘외고와 과학고’는 모두 인적이 드문 시 외곽 산중에 위치하고 있다. 조용한 산속에서 학문에 몰두 하라는 깊은 뜻이 있어 그랬다고 치자. 그런데 이들 학교가 아직 제대로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학교부지 선정 즉 교육환경은 ‘100년지 대계’의 명당을 잡는 일이기 때문에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만약 이들 학교가 접근이 편리하고 보다 쾌적한 도심의 좋은 환경에 위치했더라면 금일에 이르러 그 양상이 달라지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사정이 이럴진대 전술한 외고 부지선정을 타산지석으로 삼을만하다. 외고가 부실공사로 옹벽이 수차례 무너지고 건물이 허공에 매달려 있다는 사건내용을 접했을 때 도저히 학교를 세울 수 없는 험준한 산비탈에 학교 부지를 선정하는 것부터가 잘못이었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험준한 산비탈에 울산의 최고 영재들이 모여들 학교 부지를 선택했을까. 이 땅을 토지 소유주가 무상으로 헌납했기 때문인 것은 차치하고 관련 인사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주장이 있다. 학교부지 선정위원들이 학생들의 교육환경을 생각하기보다 제각기 지역이기주의에 매몰돼 자신들의 거주 지역으로 유치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 땅을 학교시설 용도로 기부받으면 대지 매입비를 절감 할 수 있을 것이란 근시안적 판단은 이후 축대 붕괴사고까지 겹치면서 계속되는 하자 보수 때문에 지금은 대지 매입비를 초과하는 우를 범하는 결과를 낳았다. 미래의 울산 교육 역사 앞에 죄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들어 설 교육연수원 부지는 물론 국제고등학교 부지선정 등에서는 이런 어리석은 짓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금의 교육연수원 자리는 대왕암 공원의 최고 요지이며 몽돌해변을 낀 아름다운 해변과 해송이 어우러져 있기 때문에 천혜의 교육환경을 자랑하는 명당이다. 따라서 이 이상 더 좋은 터를 울산에서 구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처럼 제자리에 맴돌기만 할 순 없는 일이다. 5년이 경과한 현 시점까지 이전 부지를 선정하지 못했다는 것은 자칫 앞에서 언급한 우를 되풀이 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학교부지 선정부터 잘못됐던 울산외국어고등학교는 설계와 감리 그리고 부실시공으로 옹벽이 붕괴돼 순진한 학생들과 울산시민들에게 준 충격과 실망을 안겨줬다. 이 일은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교육청과 시공사간에 책임을 묻는 법정공방이 이어졌다. 당시 교육청 시설의 책임자나 관계 공무원들은 그 이후 또 다른 학교 시설공사 비리로 법정에 서거나 혹은 면직 상태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울산의 미래 교육을 위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철수 울산사회교육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