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도 때리지 마라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2.04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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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수니파 원리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의 테러 만행이 지구촌을 경악하게 만들고 있다. 억류됐던 두 번째 일본인 인질 고토 겐지 씨가 최근 그들에 의해 처형됐기 때문이다.

겐지 씨는 1990년 도쿄에서 ‘인디펜던트 프레스’를 설립한 후 주로 분쟁 지역을 취재해 온 언론인이다. 그는 시리아 내전 현장을 취재할 때, 현지 어린이들의 비참한 현실을 확인하고 지원 프로그램을 만들어 직접 기부하기도 했다.

고토 씨의 한 지인은 아사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시리아에서 환영받는 존재였으며, 특히 아이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말했다.

고토 씨는 연락이 끊기기 전 마지막 영상에서 “(이곳은)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나는 시리아인들을 원망하지 않으며, 책임은 나 자신에게 있다. 일본의 여러분도 시리아인들에게 어떤 책임도 지우지 말아 달라”는 당부를 남기기도 했다.

그는 어려운 지역과 사람들을 찾아간다는 이유 때문에 첫 부인과 이혼해야만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그는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참된 저널리스트로 평가받기도 했다.

IS는 이런 그를 참수하는 동영상을 퍼뜨리고 방송과 언론 매체를 통해 분노와 좌절감을 기하급수적으로 증폭시키고 있다. 그들의 테러 만행은 소수의 사람을 참수함으로써 긴장을 극적으로 고조시키고 그들의 뜻을 관철시키는 데 목적을 두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민간인 신분으로서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하는 이들의 만행은 천인공노할 공분을 쌓아가고 있을 뿐이다. 이런 행동은 신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자비와 은총도 아닐뿐더러 인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박애주의도 아니다. 오로지 종교를 빙자한 명백한 타살이요 억압일 뿐이다.

이처럼 나쁜 뉴스가 광속으로 전파되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그에 접해야 한다는 사실이 당혹스럽다. 하늘 아래서 그들과 같은 ‘사람’의 이름으로 호흡한다는 것이 부끄러울 뿐이다.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두려움에 어디론가 자꾸 숨고 싶은 심정이다. 이제 인류 앞에 국경 없는 종교전쟁이 펼쳐지는 것인가. 용광로처럼 끓게 되는 지구촌의 민낯이 때로는 두렵기만 하다.

말세에는 육체적 타락과 도덕적, 영적 타락은 필연이라고 사도 바울은 성경에서 말했다. 요한 계시록에서 말한 평화가 없어지고 사망이 판을 치고 기근과 전쟁이 가득 찰 것이라는 묘사의 적중이기라도 하듯 현실은 아수라장이다.

인류에게 완전한 평화의 시기, 태평성대가 환하게 열린 적이 언제였던가. 천국의 현현은 아니더라도 파랑새를 좇아 살아갈 희망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노아에게 비친 무지개처럼 현실을 발 딛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꿈과 희망은 어디에도 없다는 말인가 묻고 싶다.

탤런트 김혜자씨는 월드비전의 홍보대사로 중동의 분쟁지역이나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를 방문하여 그들의 희망 없는 삶의 민낯을 들고 왔었다. 내전 등 인간이 자행하는 자기파괴가 이들의 삶을 일거에 앗아가고 찢어지는 가난으로 내 몬다는 사실을 그녀는 똑똑히 보여줬다.

부모가 죽고 가정이 무너지고 당장 생계를 위해 길거리로 내몰리는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학교는 고사하고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 위해 가혹한 노동현장에서 헤메다 생기를 잃고 삶에 지쳐 죽어가는 아프리카 아이들의 처참한 현장사진을 들고 와서 후원을 요청하고 도움을 청한 그녀가 이렇게 말했다.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 그녀 말대로 누가 과연 인간을 꽃으로 ‘때릴 수’ 있단 말인가.

박정관 굿 뉴스 울산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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