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를 사다
지혜를 사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2.03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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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상인 이 아무개가 서울 시장 몇 군데서 물건을 사서 울산으로 부치고 마지막으로 서울 시장 한 군데에서 희한한 일을 겪는다. 시장 외딴곳에 손바닥만 한 좌판을 놓고 앉아 있는 남루한 복색의 노인이 아무리 봐도 측은해 보였다. 그래서 그는 적선이라도 할 요량으로 노인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물건을 파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왜 앉아만 있습니까?”라며 넌지시 말을 건넸다. 그러자 그 노인이 “동냥 하는 것으로 보이는 가 본데, 천만의 말씀, 물건을 사기 싫으면 그냥 가시오”라고 했다.

하지만 물건이 있어야 사든지 말든지 할 것인데 도대체 물건이 보이질 않으니 호기심이 발동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파는 물건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 노인은 “나는 지혜를 팔고 있다오” 라고 했다. 하도 기가 차 “지혜라? 그럼 값은 얼마 입니까?”라고 그가 다시 물었다. “내가 팔고 있는 지혜는 정가가 1만5천원인데 댁처럼 덕성스러운 사람에게는 반값으로 할인해 7천5백원에 팔겠수”라고 노인이 즉답을 했다. “내가 덕성스럽다?” 황당무계한 이 말도 인연이라 여기며 음덕 쌓기를 좋아하는 그 울산 상인은 결국 형체도 없는 지혜를 사고 말았다. ‘성낼 일이 있으면 여러 번 생각하고 되도록 참고 참으시오. 비록 오늘 쓰지 않는다 해도 나중에 유용하게 쓸데가 있을 것이오. 참지 못하는 성냄은 순식간에 나와 남을 동시에 망쳐 버릴 수 있는 무서운 것임을 명심하시오’라는 누구나 알법한 노인의 지혜를 7천5백원에 산 그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울산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1960년대는 도로 사정이 열악해 서울에서 울산까지 7~8시간 이상이 소요됐다. 비포장도로와 포장도로를 넘나들며 한 밤중에 집에 도착한 李씨는 식구들을 깨우지 않으려고 대문 옆 쪽문을 소리 없이 열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방 가까이 다가가 으스름 달빛에 보니 자신과 아내의 침실인 안방 앞에 신발이 두 켤레 놓여 있었는데 한 켤레가 분명 남자 신발이었다. 아뿔사 이럴 수가! 순간 두 남편이 출타한 틈을 타 아내가 불륜을 저지른 것으로 단정 짓고 아내에 대한 배신감에 분기 충전한해 그는 부엌에서 식칼을 들고 나왔다. 그 때 순간 번개같이 뇌리를 스쳐 가는 기억의 파편이 있었다. 바로 7천5백원에 산 서울 노인의 지혜였다.

끓어오르는 성냄을 참고 그는 일단 진상부터 알아보기로 했다. 분노를 억누르고 그가 재차 방 앞에 다가서자 인기척에 놀라 방문이 벌컥 열리며 어머니의 얼굴이 보였다. “아범아 이제 왔느냐. 수고 했다, 어서 들어 오너라”라고 했다. 李씨가 놀라 살펴보니 한쪽에 부스스한 아내의 모습도 보였다. “아니 어떻게 어머니가 안방에서 주무 십니까?”라고 그가 묻자 어머니는 그의 아내가 몸살이 나 보살피다가 같이 잠이 들었다고 했다. 전후 사정을 듣고 난 李씨는 구름 걷힌 밤하늘에 뜬 둥근달을 보며 덩실덩실 뛰면서 외쳤다. “싸다! 정말 싸구나” 아들의 춤추는 행동에 놀란 어머니가 “서울에서 좋은 물건을 싸게 샀는가 보네. 저렇게 좋아 하는걸 보니” 라고 했다.

방에 들어온 李씨는 어머니와 아내의 손을 잡고 “어머니와 처를 천만금과도 바꿀 수 없는데 단돈 7천5백원 어치의 지혜로 두 사람을 지키게 됐으니 어찌 싼 게 아니란 말입니까?”라고 했다. 언뜻 이해하기 힘든 아들의 이 말에 고부는 어리둥절해 서로를 쳐다봤다. 그 후 李씨는 서울에서 산 지혜를 명심해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성냄(분노)을 다스리는 지혜를 바탕으로 열심히 장사해 큰 부자가 됐다. 60년대를 살던 李씨가 서울에서 산 7천5백원짜리 지혜를 2015년 울산 시장에서도 살 수 있을까.



<이영조 중구 보훈안보단체협의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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