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테크리스토
몬테크리스토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2.03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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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낱말의 자유연상(自由聯想)은 시대와 그에 따른 문화권에 따라 다양하게 되어 있다. ‘어머니’는 탈무드의 말대로 신과 같아서 보편적으로 자식에 대한 ‘사랑’이 연상되지만 ‘아버지’는 연령에 따라, 문화권에 따라 연상되는 낱말과 빈도수가 다르다. 영어에서는 주로 낱말을 제시하고 이때 연상되는 낱말의 빈도수를 분석하며 언어발달의 문법적인 작용과 의미적인 작용의 변화를 탐구했다. 이것이 발전하여 주어진 문장에서 이 연상 작용이 문맥의 흐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파고들면서 수사학(rhetoric)의 연구와 발달심리학에서는 언어발달의 연구에 많은 자료를 제공했다. 비슷하게 우리말을 연구하면서 사춘기의 남자에게 ‘성(性)’이라는 낱말을 보고 자유연상하게 했을 때, 그 반응이 퇴계선생의 성리학(性理學)을 떠올리는 경우가 얼마나 되나와 S자 연예인을 연상하는 경우는 얼마나 되나 비교하면, 사춘기의 정서적 지배경향을 가늠하게 하는 일종의 증거가 된다.

또한 똑같은 질문을 안동의 도산서원(陶山書院) 인근의 청소년과 여름철 해운대 해수욕장 근처에 놀러와 있는 청소년에게 실시했을 때, 어떤 차이가 있는지 그 반응들을 분석하면 상당한 대조를 이룰 것으로 가설을 세워 볼 수 있다. 서로 다른 문화적 영향까지로 발전시킬 수 있다. 서울에서 ‘승용차’했을 때, 연상되는 낱말들의 빈도수와 같은 낱말을 울산에서 제시했을 때 연상되는 낱말들을 비교하는 것이다. 짐작컨대 서울에서는 외제승용차 종류들이 나오고 울산에서는 현대 자동차가 많이 나올 것이다. 광고학에서 접근하는 방식의 하나가 여기에서 나온다.

‘몬테크리스토’는 시대적으로 색다른 연상 작용을 불러일으킬 것 같다. 과장하면 서울의 역삼동에 있는 ‘MONTE CRISTO museum lounge’에서 ‘몬테크리스토’만 읽고서 유대균(벌써 잊을 사람이 있어 다시 기억을 되살리면 세월호 참사를 일으킨 유병언의 장남)씨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고, 발차기로 유명한 유병언씨가 그려지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세월호 사건이 한창 언론에 회자될 때에 일어난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자유연상이 되는 것은 아마도 소설 몬테크리스토 백작(The Count of Monte Cristo)일 것이다.

소설은 알렉산드르 뒤마가 1865년에 발표한 것으로, 옛날 프랑스에서 주인공(단테스)이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하고 우연한 도움을 받아 통쾌한 복수를 하게 되는 전형적인 통속 소설이다. 유명한 이야기의 하나가 필적 감정을 피하기 위한 방법이 나온다. 왼손(듣지 않는 손)으로 쓰면 필적 감정이 안 된다는 것이다. 컴퓨터가 지금처럼 보편화 되지 않았을 때, 이 소설을 읽은 중학생들은 이 주인공을 흉내 내어 장난으로 친구에게 욕을 써서 보내기도 하였다. 대개는 다른 방법으로 찾아내었지만 훗날 연상작용을 불러오기에는 충분했다.

2014년 겨울 오후 시간, 서울의 몬테크리스토 라운지 양식당에는 소설의 주인공 단테스는 없고, 외딴섬 동굴 속에서 건져 올렸던 보석 궤짝들의 팔촌(八寸)만 쌓여있다. 라운지의 카운터부터 입장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기분 나쁘게 훑어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필자는 뒤통수에 쏘여지는 눈길을 감수하며 한 바퀴 둘러보았다. 젊은이를 상대로 하는 양식당이어서 그런지 늙은이(?)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부자도 없었다. 유대균씨의 초상화작품만 걸려있었다. 잠시 그의 예술세계를 탐색하려고 하였다. 조소(彫塑)는 조금 고급스런 어감을 주지만 사실은 조각(彫刻)과 소조(塑造)를 조합한 말이다. 조각은 깎아내는 것이고 소조는 흙으로 빚어내는 것이다. 몬테크리스토 라운지에는 소조작품들만 진열되어 있었다. 그는 세월호 참사를 뼈를 깎는 아픔으로 승화시키는 작품에 몰두해보아야 할 때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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