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性的) 갑질’
‘성적(性的) 갑질’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2.0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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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후반의 일로 기억된다. 가정형편으로 학업 기회를 놓친 직업청소년들을 동사무소 2층에 모아 가르치던 야간학교 자원교사 시절이 있었다.

하루는 여선생 한 분이 조심스레 다가와 상담을 청했다. 초급대학 졸업반인 그녀의 얘기인즉슨, 소속 학과의 A교수가 여제자들을 수차례 교수실로 불러 학점을 미끼로 곤혹스러운 요구를 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는 것이었다. 또 자신은 학점을 깎이는 한이 있어도 그 짓만은 도저히 응용납할 수 없는데, 당신 생각은 어떠냐고 되묻는 것이었다.

당시엔 ‘기가 차지만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 믿고 싶었고, 그런 생각은 얼마 전까지도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이 변화를 강요했다. 근자에 들어 소위 유명 대학교의 일부 교수들이 여제자들을 틈만 나면 괴롭혀 왔다는 따위의 추문이 언론매체를 통해 연쇄적으로 보도되면서 그런 믿음에도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울산의 모 대학 B교수도 그런 불신에 일조했지 싶다. 유사 사례는 아니지만, B교수는 다른 지방에서 ‘허리아래’ 문제로 물의를 일으켰다가 직을 그만두어야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어찌 보면 이들의 행동거지 모두 ‘성적(性的) 갑질’의 범주에 속한다는 점에선 유사성이 있다.

놀라운 것은 ‘성적 갑질’이 상아탑 속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지극히 일부’에 국한되는 사례로 치부하고 싶지만, 성적 갑질이 ‘군기(軍氣)’로 상징되는 대한민국 군 내부에서도 버젓이 꼬리를 물고, 그 때문에 ‘성군기(性軍氣)’라는,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군대식 용어까지 접하기에 이르렀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성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군 수뇌부가 한창 머리를 싸매고 ‘성군기 대책’을 수립하는 와중에 나왔다니….

육군이 내놓았다는 ‘성군기 행동수칙’이란 것도 여간 흥미로운 게 아니다. 법적 구속력을 갖는 ‘일반명령’으로 일선 부대에 하달될 예정이라는 이들 여러 가지 대안 중에는 ‘남자 군인이 혼자서 이성 관사를 출입할 수 없다는 규칙이 들어있다. 여군과는 한손 악수만 해야 하며, 남자 군인이 여군과 단둘이서 차량으로 이동해서도 안 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지금이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 시대냐’하는 비아냥거림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인지 모른다.

더욱 가관인 것은, 군 정보부서 사령관을 지냈다는 여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C씨의 천박하기 이를 데 없는 발상과 언행이다.

육군 여단장 D대령이 나이차이가 20살이 넘는 여성 하사관을 공관으로 불러들여 저질렀다는 성적 유린을 두둔한 것도 모자라 ‘아가씨’ 운운하는 상식 밖의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D대령의 짓거리는 상명하복의 폐쇄적인 조직문화 속에서 배태된 또 하나의 ‘성적 갑질’이 아닐 수 없다.

시대착오적 행위들이 왜 자꾸만 고개를 드는 것일까? ‘허리아래 문화’라면 지나칠 정도로 관대한 우리네 일그러진 사회상과도 무관치 않은 것은 아닐까. 그런 얘기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풍토가 울산이라고 예외는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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