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인연’
소중한 ‘인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1.26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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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이른 아침에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멀리 떨어진 대학병원에 다녀왔다. 버스를 타고 가면 집에서 1시간 정도 거리다. 아침 출근시간대임에도 버스에 타고 있는 승객은 고작 서너 명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시내 중심가에 다다르자 수십 명으로 늘어났다. 출근길 활기찬 샐러리맨들의 모습을 보니 저절로 기운이 솟아났다.

마침 버스에서 들리는 라디오 교통방송은 하루를 더욱 살맛나게 했다. 출근 시간대 시내 어디에서 도로가 막히고 어느 방향으로 가면 소통이 잘되는지 미리 알려 주고 있었다. 친근한 목소리에 감칠맛 나게 진행하는 솜씨는 서울 어느 방송 못지않게 능숙했다. 삶의 화젯거리를 곁들여 가면서 푸근하게 진행하고 있었는데 그 화제가 필자가 새해 연두소감의 주제로 삼았던 ‘인연’과 비슷했다.

수많은 세파 속에 그냥 옷깃만 스쳐 지나도 인연이라고 하지 않던가. 가까운 ‘이웃’을 만나는 일은 큰 인연이러니와 ‘친구나 연인’을 만나는 것은 더 큰 인연이 아닐 수 없다. 하물며 ‘가족과 친척’은 더할 나위 없이 완전 소중한 인연이다. 이 지구상에는 수십억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중 한 번도 만나지 못하는 사람은 부지기수일진대 그들과의 만남은 정말 인연 중에서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지난해 데뷔 30주년 기념 콘서트를 연 동안(童顔)의 50대 여가수가 열창하는 노래를 잠시 들어보자. 노랫말이 너무 애절할 수 없다.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그 중에 그대를 만나 꿈을 꾸듯 서로를 알아보고…” “인연이라고 하죠. 거부할 수가 없죠. 내 생에 이처럼 아름다운 날 또 다시 올 수 있을까요? 고달픈 삶의 길에 당신은 선물인걸…”

이같이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하필이면 왜 ‘그대’이고 왜 ‘당신’인가? 그야말로 그대를 만난 건 정말 행운이고 다행스러운 일임을 절절히 노래하고 있다.

잠깐 불가(佛家)의 ‘인연’을 빌려보자. 세상 만물은 모두 상대적 의존관계에 의해서 형성된다고 한다.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는 직접적인 원인을 ‘인(因)’이라 하고, 인과 협동하여 결과를 만드는 간접적인 원인을‘연(緣)’이라 한다. 농사를 예로 들면, 종자를 ‘인’이라 하고 비료나 노동력은 ‘연’이다. 아무리 ‘인’이 좋다 할지라도 ‘연’을 만나지 못하면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는 심오한 의미가 있다.

1973년 발표한 피천득(1910~20 07)의 자전적 에세이 ‘인연’을 감상하자. 그의 일본유학 시절 ‘아사코’라는 여인과 얽힌 아름다운 회상이 너무나 치밀하고도 깔끔한 구성으로 표현된 작품. 그는 17살 학생 때 그녀를 처음 만나고 30살에 두 번째 만난다. 그리고 세 번째 만남은 40살 무렵이다. 처음엔 ‘아사코’를 어리고 귀여운 꽃 ‘스위트 피’로 비유했고, 다음에는 청순하고 세련되어 보이는 꽃 ‘목련’으로 비유한다. 그리고 마지막 그녀에 대한 만남에는 시들어가는 꽃 ‘백합’으로 표현하였으니 아쉽게도 그녀에 대한 미학적 묘사는 점점 약화되어만 갔다. 어쩌면 그런 현상도 인연으로 단정지울 수 있지 않을까?

특히 그는 이 작품에서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라는 유명한 명언을 남긴다.

그녀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과 아쉬움이 교차되어 있어 많은 독자들을 매료시키는 것이다.

‘인연’은 소중해야 한다. 하필이면 왜 당신인가? 어느 누구든 이 같은 삶에서의 인연은 있을 것이다. 을미년 새해를 맞이하여 제발 일체만물이 악연이 아니라 ‘선한 인연’으로만 맺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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