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그 옛 향기가 그립다
종로, 그 옛 향기가 그립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1.21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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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서민들이, 종로 대로에서 말을 타고 활보하는 지체 높은 양반들을 피해 다니던 길이란 뜻의 ‘피마(避馬)’에서 유래한 뒷골목이 ‘피맛길’이다. 예부터 사람 냄새가 켜켜이 배어 있던 이 길은 종로를 종로답게 만든 가장 낭만적인 골목이었다. 양반과 평민의 구별이 엄격했던 조선시대 서민들은 양반이 탄 말이 지나갈 때마다 땅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종로를 다닐 때마다 매번 그렇게 머리를 조아려 시간을 허비해야 했던 서민들은 마침내 큰길 옆에 말 한 마리가 겨우 다닐 수 있는 좁은 골목을 만들어 이용했다. 그 길을 따라 형성된 맛집 촌이 이른바 피맛골인데,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저렴한 가격의 선술집·국밥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식도락가들의 발길이 잦았다.

피맛골에서 이어지는 종로구청길, 청진동길에도 낙짓집, 해장국집이 즐비했다. 어둑해질 무렵 종로 피맛골은 직장인들이 빈대떡 안주에 막걸리 한 사발 마시러 들렀던 서울의 전통 먹자골목으로 서민적인 메뉴들이 총집합한 곳이었다.

19세기 후반 서울을 여행한 프랑스의 동양학자 ‘모리스 쿠랑’은 ‘조선문화사 서설’에서 ‘서점은 전부 도심지대에 집중돼 종각부터 남대문까지 기다란 곡선을 그리고 나아간 큰길가에 자리잡고 있다’라고 썼다. 특히 지금의 광교 주변이 오래 전부터 독서 문화가 발달한 곳임은 여러 역사적 문헌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예부터 종로 일대의 서점과 출판사는 지식인들의 갈증을 풀어 주는 회합장소이기도 했다.

종로는 일제강점기에도 출판문화의 중심 거리였다. 그 무렵 지식인들은 지금 YMCA 옆에 있던 우미관(優美館)에서 영화를 보고, 기독교서회서점, 박문서관, 영창서관에 들러 책을 사는 것이 대단한 즐거움이었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대부분의 서점들이 출판을 겸하고 있었으므로 지방 서점업자들은 모두 종로거리에 와서 책을 구입해야 했다.

80년대만 하더라도 무교동 낙지집이나 종로거리 식당, 주점에 가면 출판계 지인들과 눈 마주치기가 바빴다. 유명작가들을 곁에서 보는 일도 흔했고, 서점과 출판사 간에 정보를 교환하기에도 수월했다. 이처럼 종로는 출판문화의 거리였으며 그 향내가 물씬 풍기는 곳이었다. 그 무렵 종로통엔 ‘종로서적’과 ‘동화서적’ ‘삼일서적’ ‘양우당’ 같은 서점과 극장이 몰려 있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종로는 문화중심지로서의 기능을 잃었다. 서점 또한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하더니 종로서적까지 셔터를 내리고 말았다. 특히 종로서적은 수십 년 동안 한국 지식인들에게 대표적인 만남의 장소를 제공했다. 하지만 아늑한 환경과 세련된 도서목록으로 유명했던 종로서적도 이른바 미국의 ‘보더스 북앤뮤직’을 본뜬 서점 체인이 주도하는 새로운 경향을 따라가지 못해 간판을 내려야만 했다.

책과 독자가 만나는 유일한 장소인 서점이 줄었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문화가 어디로 흐르는지, 남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를 구체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공간의 상실이며 책의 향기와 소리, 지식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주는 곳을 잃고 있다는 심각성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중소 서점의 폐업 현상은 우리가 정신적인 여유를 잃고 있으면서도 절박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방증이라고 볼 수 있다.

날마다 숨 가쁘게 진행되는 신축 또는 재개발 등의 물리적인 변화를 겪으면서 어쩌면 우린 앞서간 분들이 남긴 문화적 향기를 아예 잊고 사는 게 아닌지 한번 쯤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즐비한 서점들 간판 아래, 작가와 교사, 학생, 직장인의 물결로 넘쳐나던 그 시절 종로통의 문화적 향기가 더욱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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