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명(作名) 에피소드
작명(作名) 에피소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1.19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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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세밑, 2주 연달아 보고 배꼽 잡은 기억이 난다. K본부의 ‘나는 남자다’라는 예능 프로그램 덕분이었다. 별난 이름 탓에 남다른 체험을 겪어야 했던 보통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웃음을 배달하는 토크쇼였다. 스튜디오에는 ‘지마음’ ‘지대로’ 남매는 물론 ‘국정원’ ‘박격포’ ‘성기왕’씨까지 출연해 폭소를 자아냈다. 여성인 ‘국정원’씨의 20세 이전 이름은 ‘국영수’라 했다.

‘바우’ ‘개똥이’ ‘끝자(末子)’란 이름들은 한물 간 지 오래다. 바야흐로 ‘하늘이’ ‘보람이’ ‘구슬이’ 시대다. 그러긴 해도 한자 투 이름이 매력적일 때도 있다. 독립운동가 김좌진 장군의 손녀 김을동 국회의원의 ‘삼둥이 외손자’도 그런 예다. 배우 송일국씨의 세쌍둥이 아들 ‘대한’ ‘민국’ ‘만세’ 얘기다.

K본부의 육아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인기가 하늘을 찌른 이후 송일국씨가 세쌍둥이를 모델삼아 한정판으로 찍은 게 있다. 이른바 ‘삼둥이달력’이다. 그 값이 천정부지(天井不知)라는 소식은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6~10배라도 비싸지 않다는 열성구매 대열의 앞머리에 미혼여성들이 있더라는 뉴스는 저출산(低出産) 걱정을 잠시나마 잊게 해준다.

소위 ‘철학하는 양반들’ 지론에 의하면, 이름은 사람의 길흉화복, 사업의 성패를 좌지우지할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작명(作名)에 거금도 불사하는 이들이 있다. 당명(黨名) 짓기에도 그런 경향이 강하다.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를 지낸 전병헌 국회의원이 새해 들어 내놓은 제안은 ‘민주당’으로의 복귀였다. ‘새정치’의 대명사인 안철수 국회의원은 “도로 민주당, 안 될 말”이라며 펄쩍 뛴다. “전국각지의 당 행사에서 당 이름 제대로 발음하는 당원, 하나도 못 봤다”는 게 전 의원의 과장법적 주장이다. 너무 길 뿐 아니라 줄여 부를 땐 엉뚱한 이름이 튀어 나오기 일쑤라는 설명이 붙는다.

사실 일리는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을 줄여 ‘새정련’ ‘새민련’ 했으면 했지 ‘민주당’으로 불러주진 않는다. 앙숙인 새누리당은 ‘새민련’ 빼면 속된말로 시체다. ‘자민련의 아류’쯤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 소망이 짙게 깔려 있다.

작명의 논리에서는 자동차 이름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현대자동차의 장수상품 ‘쏘나타’의 첫 출시 때 이름은 ‘소나타’였던 것으로 안다. “소(牛)나 타는 차냐”는 비아냥거림에 회사는 용단을 내렸다. 개명(改名)의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최근엔 고급 승용차 ‘아슬란(ASLAN)’이 또 문제다. 일부 언론은 “작년 하반기, 대기업 임원급을 겨냥해 출시된 이 야심작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은 차 이름 때문”이라고 호들갑이다. ‘편안한 승차감’ ‘그랜저 써스보다 더 안정적으로 단단한 느낌’ ‘전륜구동에서 느낄 수 있는 국산차 최고의 세단’ ‘그랜저에 제네시스를 입혀놓은 느낌’이라던 누군가의 초기 시승기(試乘記)가 무색할 정도다.

‘아슬란’이란 터키어로 ‘사자’란 뜻이다. 4∼5천만원대 수입차 수요를 흡수하겠다는 의지로 만들었다는 이 차종이 판매부진에 시달리는 현상을 놓고 호사가들은 이렇게 내뱉는다. “‘아슬란이 임원용 차로는 부적절하다’는 우스갯소리가 대기업에 나돈다. 이름이 문제라고 한다. 임원은 매년 실적이 생존을 좌우하는 ‘아슬아슬’한 신세여서 어감이 비슷한 아슬란 타기를 꺼린다는 것이다.”

정 그렇다면 ‘소나타→쏘나타’처럼 이름을 바꾸면 해결이 될까? 하지만 그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데 현대차의 고민이 있는 모양이다. ‘미신 타파’ 기도라도 대신 올려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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