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사 어미와 헝겊 어미
철사 어미와 헝겊 어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1.15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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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사업으로 바쁜 아버지, 어머니 대신 10년 넘게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해 부모님과 함께 지내게 되면서 악몽의 시간도 함께 시작됐다.

하루 종일 일에 쫓겼던 부모님은 밤늦게 집에 들어오자마자 ‘왜 공부를 안 했는지, 학원에는 왜 빠졌는지’를 캐물으며 혼내고 야단맞는 일상이 시작됐다. 그런데 부모님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을 적지 않은 용돈으로 대신하려 했다. 당시 나에게 정말 필요한 건 용돈이 아니었다. 그저 따뜻한 말 한마디와 나의 말에 귀 기울여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었다.

1957년 해리 할로우라는 심리학자가 새끼 원숭이들을 대상으로 흥미있는 실험을 실시했다. 가슴에 우유병을 달고 젖을 주는 ‘철사 어미’와 젖은 없지만 부드럽고 폭신한 ‘헝겊 어미’ 두 종류의 어미를 만들어 새끼 원숭이들의 반응을 살폈다. 새끼 원숭이들은 배가 고프면 잠시 철사 어미에게 가서 젖을 먹고 배가 부르면 곧바로 몸을 비빌 수 있는 천으로 만든 ‘헝겊 어미’에게로 갔다. 좀 더 자라면서 젖을 먹을 때에도 헝겊 어미에게 매달려 철사 어미의 젖을 먹기도 했다. 새끼들은 하루에 17~18시간 동안 헝겊 어미와 붙어 지냈지만 철사 어미와 보내는 시간은 기껏해야 1시간 미만이었다. 벌을 주는 ‘나쁜 어미’에게는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알아보기 위해 헝겊 어미 속에 철제 가시를 박아 놓았지만 새끼들은 여전히 그 곁을 떠나지 않았다.

이 실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이들이 부모를 믿고 따르고 사랑하게 되는 것은 단순히 젖을 주기 때문에 혹은 보상을 해줘서가 아니다. 바로 따뜻하고 부드러운 접촉이 이루어질 때 아이들은 행복감을 느끼고 사랑받고 있음을 깨닫고 다른 이에게 사랑을 나누어주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많은 어른들이 “요즘 아이들은 정말 기본이 안 돼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 기본을 가르쳐주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우리 어른들이다. 배울 자세조차 안 돼 있는 아이들에게 무슨 교육이냐고 반문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아이들에게 어릴 때 적절한 사랑과 교육이 병행되었다면 이들의 태도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청소년기는 질풍노도의 시기이자 자아 정체성 확립의 시기이다. 이때 긍정적인 자아가 형성된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의 미래는 확연히 달라진다. 미성숙한 청소년들이 우발적으로 혹은 호기심에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을 때 어른들이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밝아 질수도 혹은 더 어두워질 수도 있다. 단 한 번의 실수를 이유로 이 아이들에게 범죄자라는 주홍글씨를 새기고 거리로 내모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오히려 혼란스러운 시기의 아이들에게 범죄를 부추기는 행위밖에 되지 않는다.그런 의미에서 2012년 발족한 학교전담경찰관 즉, 스쿨폴리스(SPO)는 매우 큰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청소년들의 무조건적인 범죄화를 막고, 상담과 교육을 통해 비행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는 것이 바로 스쿨폴리스의 주요 업무이다. 물론 극악무도한 중범죄를 저지르는 10대들도 있다. 이들에게는 당연히 분명한 처벌이 이루어져야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중범죄를 저지르는 청소년은 그리 많지 않다. 첫 비행이 발생했을 때 제대로 된 교육이나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더욱 큰 범죄로 나아가는 것이다.

대부분의 초, 중, 고등학교가 겨울방학에 들어갔다. 방학이 되면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아 성가시고 게다가 간식까지 챙겨줘야 한다며 귀찮아하는 부모가 적지 않다. 하지만 방학기간은 평소 학업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자녀와 살을 부비고 따뜻한 대화를 나눌 더 없이 좋은 기회다. 철사 부모가 아닌 헝겊 부모가 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놓치지 말길 바란다.

<이수연 중부경찰서 아동청소년계 경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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