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락아정(常樂我淨)
상락아정(常樂我淨)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1.15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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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뒤를 분간키 어려울 정도로 어둠이 짙게 깔린 절길을 따라 삼보일배하면서 고행(苦行)을 시작한지도 한 시간이 지났건만 암자까지는 아직 1km가 넘게 남았다고 했다. 그러나 누구하나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다.

밤 11시 가까이 돼서 암자 뜰에 도착했다. 까진 무릎에선 피가 흐르고 땀범벅이 된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모두 지쳐 잇었지만 머리는 한 없이 맑고 고행을 완수했다는 성취감에 밝은 얼굴들이었다. 촛불을 환하게 켜 두고 기다리시던 스님께서 인자한 모습으로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셨다. 그런 뒤 모두에게 오른 쪽 팔을 내 밀라고 하셨다. 그러더니 오른 쪽 팔에 불 붙은 향을 올려놓고 연비를 해 주시면서 한 사람씩 불명(佛名)을 내리셨다. 상락(常樂)-그 때 내게 내려진 불명이다. 항상 우울함을 가슴에 품고 살았는데 항상 즐겁게 살라고 하니 정말 좋은 이름 아닌가. 그렇게 해서 아버님이 지어 주신 이름 외에 처음으로 별명인 불명을 하나 가지게 됐다. 하지만 한 동안 내 불명을 잊고 살았다. 그런데 한번은 경불련 회장 자격으로 동국대 명예 교수인 목정애 박사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함께 동행했던 일행 가운데 한 사람이 목 박사에게 “박사님, 울산 경불련 회원을 위해 류 회장이 항상 애를 많이 쓰는데 좋은 글 하나 써 주시면 어떨까요?”라고 했다. 그러자 목 박사님이 쾌히 승낙하시면서 “류 회장님이 약사라고요? 불명이 뭐죠?”라고 했다. 필자가 재빨리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하자 그 일행이 “아, 류 회장님 호는 상락이잖아요. 지난번 암자에서 받은 호를 벌써 잊어 먹었단 말입니까. 박사님 상락이란게 상락아정(常樂我淨)에서 따 온거 아닙니까”라고 했다. 붓을 잡은 목 박사님이 한지韓紙)에 가벼운 삽화를 그리고 나서 ‘常樂居士 마음 몸 아픈 사람 하늘 물 받아서 극락되게 하니 항상 기꺼운 불행(佛行)이리’라고 써 넣은뒤 낙관까지 찍어 필자에게 건넸다.

필자는 그 글을 족자에 넣어 거실에 걸어 두고 ‘내가 깨끗하면 항상 즐거움이 가득해 질 수 있다’라고 마음속에 새기며 살아왔다. 그런데 얼마 전 수필을 쓸 일이 있어 인터넷에서 그 뜻을 찾아 봤는데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됐다.

‘상락아정은 열반경에 나오는 말로 부처의 경지인 열반의 네 가지 덕(德)을 의미한다. 영원 불멸한 본성을 상(常)이라 하는데 부처 같은 본성은 없어지지도 변하지도 않기 때문에 常이라고 한다. 부처의 경지는 인연을 초월하고 업장을 소멸한 해탈의 경지이므로 고해(苦海)의 바다 같은 인생을 초월하여 당연히 즐거운 락(樂)의 경지에 있어서 락(樂)이라고 한다. 본래자아(本來自我) 즉 살면서 희로애락에 물 들지만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기 전에 해당하는 백지 상태의 청정무구한 자아가 그대로 드러나는 상태가 부처이므로 아(我)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정(淨)은 맑은 정(淨)이러고 하여 번뇌망상이 없이 고요하고 맑은 상태를 말한다’라고 돼 있었다. 그 뒤 필자는 상락(常樂)이란 불명의 의미에 만분의 일이라도 따라가기 위해 행동거지를 가다듬고 있다.

올해는 청양(靑羊)의 해이다. 말 그대로 부드럽고 평온한 한해임을 의미한다. 그에 걸맞는 별명을 하나 갖는 건 어떨까. 그리고 각박하고 삭막한 세상을 부드럽고 평화스럽게 살아갈 수 있도록 그 의미를 갈고 닦아 생활 속에 녹아들도록 하는 건 어떨까.

<류관희 전 강원도민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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