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그때 다 힘들어요
그때그때 다 힘들어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1.12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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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그때 달라요”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의 삶이 힘이 드는 것도 세대마다 다르다. 국제시장의 세대가 처자식 굶겨 죽이지 않고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이 힘이 들었다. 그러면서 아버지에게 위로를 받고 싶어 이야기를 한다.

“아버지, 저 이만하면 잘 살았지예? 근데 저 진짜 힘들었거든예”

오늘날의 세대는 또 다른 힘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루하루를 견딘다. 물론 지난 역사를 살펴보아도 어느 한 시대 힘들지 않은 세대가 없었을 것이고 우리 미래의 세대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삶이란 힘들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은 때가 있어 마치 놀이터의 롤러코스트처럼 기쁨과 슬픔이 어지럽게 교차가 되는 것이다. 지난 12월 말에 306보충대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는 이야기가 몇몇 신문에 나왔다. 그 이유는 매년 입대자 감소로 부대를 통폐합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기사를 보고 그 훈련소를 나온 군인들은 힘들었든 그 시절을 생각해 볼 것이다.

306보충대는 1959년 4월1일 육군 3군 사령부의 예하 부대로 창설되어 연간 육군입영인원의 35%인 8만여명으로 이제까지 대략 500만이 거쳐 갔다고 한다. 여기서 전국에서 모인 장정(壯丁)들이 3박4일간 입대에 필요한 신체검사를 받고 이상이 없으면 훈련병으로 입소를 하게 된다. 이때 집에서 입고 온 사제 옷을 집으로 보내게 된다. 그 속에는 간단한 인사편지도 잊지 않고 짧게나마 쓴다.

“아버님 어머님 저는 잘 도착했습니다. 열심히 군 복무를 하여 몸성히 제대하겠습니다. 훈련소에서 아들 봉대 씀”

짧은 편지에 묻는 눈물의 편지와 옷을 보고 정말 군대를 갔음을 실감하고 눈물을 훔치는 것이 당시의 보통의 풍경이다. 나의 부모님이 그랬고 나 역시 아들이 보낸 온 소포를 받았기 때문에 군대 이야기를 하면 잊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306보충대에서 입영하는 청년들이 양팔로 하트를 만들어 보이며 전송을 나온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니 그 옛날 나의 모습이 보였다. 물론 지금과는 크게 다르다.

벌써 30여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입대하는 그날의 참담함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때는 지금처럼 부대까지 혼자서 입영하는 것이 아니라 한 지역에 모여서 입영기차를 타고 가게 되었다. 나는 친구들 보다 늦게 입대를 했다. 당시 울산의 장정들은 진주에 모여서 기차를 타고 입영을 했다. 친구가 입영을 할 때 내가 같이 가서 하루 밤을 자고 보내 주었다. 그 후 내가 입대를 할 때는 이미 제대를 한 그 친구가 나를 전송해 주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입영에 대한 품앗이를 하였다.

기차를 서서히 기차가 역을 벗어나자 기차 안은 바로 치열한 유격훈련장으로 변했다.

“의자위에 수류탄”, “의자밑에 수류탄”을 외치는 완장을 찬 조교들의 벼락같은 소리에 우리의 정신도 같이 수류탄을 피한다고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306보충대에 도착할 때까지 그 고통을 정말 참기가 어려웠다. 처음으로 만나는 군대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그 시간의 효과는 대단했다. 역에 내리자 우리 모두의 눈은 반짝거렸으며 보충대를 가는 동안 이미 군기가 바짝 들어있어 반쯤은 군인이 다 되었다. 몇 년 전 아들이 군 입대를 했다. 아버지와는 다르게 군대 복이 있었는지 우리나라 훈련소 중에서 가장 좋은 논산훈련소에 입대를 했다. 가족들의 환송을 받으면서 연병장을 한 바퀴 돌고 사라졌다.

나는 나대로 군대가 힘들었고 아들은 아들대로 또 군대 생활이 힘들었으리라. 그러나 단언하건대 나의 아버지의 군대 생활은 더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어느 세대의 삶이 힘들었는지는 그때그때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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