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존중의 문화를 기다리며
인간 존중의 문화를 기다리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1.06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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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만큼 다사다난한 해도 드물었던 듯하다. 세월호가 기울어가는 몇 시간 동안 우리는 손 한번 제대로 써 보지 못한 채 삼백여 명의 목숨을 바다 속에 잃어버렸다. 군대 병영에서는 야만적 가혹행위 속에 한 병사가 동료들에게 맞아 죽어 갔다. 또래들의 엽기적인 가혹행위 속에 참혹하게 죽은 뒤 시신까지 훼손된 한 여고생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를 망연자실하게 했다. 연말에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로 지목되어 온 재벌 문화의 단면이 드러났다. ‘땅콩 회항’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전 세계인들의 웃음거리가 됐다.

그런데, 이 사건들을 곰곰이 뜯어보면 하나같이 그 이면에는 비문명적인 우리 사회의 병폐가 숨어 있다. 세월호 사건에는 비리를 눈 감아 온 천민자본주의 사회의 고질적 병폐가 숨어 있었으며, 병영 속의 야만적 폭력 사태 또한 위계적 권위에 의한 폭력을 군기라는 이름으로 묵과하거나 조장해 온 우리의 후진적 병영 문화가 도사리고 있다.

병영 속의 가혹행위도, 가출 청소년들의 엽기적 폭력도 모두 인간성이 사라진 자리에는 악마의 얼굴이 들어선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준 사건들이다. 인간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없는 위계문화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사태를 불러오는지 땅콩 회항 사태에서 우리는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우리 사회의 병폐가 어찌 이뿐이랴. 이른바 ‘수구꼴통’과 ‘용공좌빨’ 간의 고착된 대립과 증오의 골은 우리 사회의 고질병이다. 이 고착된 증오의 골을 극복하지 못하면 우리 사회는 한 발짝도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이 두 대립의 축은 실은 객관적 존재라기보다 다들 상대가 붙여준 이름일 뿐이다.

즉 실체가 없는 허수아비인 것이다. 서로 허수아비들을 만들어 놓고 마구 공격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일종의 자위행위일 뿐이다. 스스로의 증오심을 물고 뜯으며 위안을 얻는 이 모습은 생각하면 불쌍한 일이다. 이 천박한 허수아비 공격의 놀음을 넘어서지 않으면 우리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기 어렵다.

을미년 새해를 맞는 마음이 가볍지 않은 것은 이런 병폐들이 결코 쉽게 고쳐질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세월호 사건 직후 우리 사회는 마치 거대한 정신 혁명이라도 일어날 듯한 분위기였으나 지금은 그 교훈을 잊은 지 오래인 듯하다. 오히려 희생자 가족들이 빈정거림의 대상이 되는 몰염치한 사회가 돼 버렸다. 인간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문화는 결코 한 순간에 형성되지 않는다. 많은 교육자들과 언론인 및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함께 공감하고 뜻을 모아도 쉽지 않은 일일진대,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위계문화는 인간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싹조차 쉽게 용납하지 못하는 듯하다.

세월호 유가족 앞의 폭식 퍼포먼스가 말해 주듯 우리 사회는 인간을 경멸하고 조롱하는 사회이면서, 땅콩 회항 사태에서 보여 주듯 위계문화의 권력 앞에서는 최소한의 인간적 자존감마저 버려야만 자리 보존이라도 가능한 사회가 아닌가.

그러나 어쩌랴. 사정이 이렇다 해서 우리 스스로를 마냥 자학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새해를 맞으며 아무런 희망도 실어 보지 못할 사회로 만드는 것은 우리 스스로를 더욱 비참하게 하는 일이기에 을미년 새해 벽두에 어렵게나마 작은 소망을 걸어 본다. 부디 새해에는 우리 사회에 인간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문화가 싹이라도 트기를 기대해 본다. 나와 다른 상대를 인정하는 관용의 태도가 학교 교육과 언론에서 살아나면 좋겠다. 그리하여 다양한 가치가 존중받고 서로 공존하는 성숙한 사회로 발돋움할 수 있으면 좋겠다.

서상호 효정고 교사

우정희 동구청 기획예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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