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자는 노마지지(老馬之智)
퇴직자는 노마지지(老馬之智)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1.0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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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지지(老馬之智)란 ‘늙은 말의 지혜(智慧)’란 뜻으로 아무리 하찮은 사람도 각자 그 나름의 장기나 슬기(장점)를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노마지지는 한비자 설림(說林)편에 나오는 말이다.

중국춘추시대(春秋時代) 오패(五覇) 중 한 사람이었던 제(齊)나라 환공 때의 일이다. 어느 해 봄, 환공은 명재상 관중과 대부 습붕을 데리고 고죽국(孤竹國)을 정벌하러 나섰다. 그런데 전쟁이 의외로 길어지는 바람에 그해 겨울에야 끝이 났다. 그래서 혹한 속에 지름길을 찾아 귀국하다가 길을 잃고 말았다. 전군이 진퇴양난에 빠져 떨고 있을 때 관중이 말했다. “이럴 때 ‘늙은 말의 지혜’가 필요하다<老馬之智>” 며 즉시 늙은 말 한 마리를 풀어 놓았다. 그리고 전군이 그 뒤를 따라 행군한 지 얼마 안 돼 큰길이 나타났다.

또, 한 번은 산길을 행군하다 식수가 떨어져 전군이 갈증에 시달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습붕이 말했다. “개미란 원래 여름엔 산 북쪽에 집을 짓지만 겨울엔 산 남쪽 양지 바른 곳에 집을 짓고 산다. 흙이 한 치(一寸)쯤 쌓인 개미집이 있으면 그 땅속 일곱 자쯤 되는 곳에 물이 있는 법이다”라고 했다. 군사들이 산을 뒤져 개미집을 찾은 다음 그곳을 파 내려가자 과연 샘물이 솟아났다.

한비자는 이에 대해 그의 저서 <韓非子>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관중의 총명과 습붕의 지혜로도 모르는 것을 늙은 말과 개미를 스승으로 삼아 배웠다. 그러나 그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았다”

‘노마지지(老馬之智)’란 여기서 나온 말인데 요즈음에는 ‘경험을 쌓은 사람이 갖춘 지혜’란 뜻으로 흔히 쓰이고 있다. 인생 제2막을 준비하는 시니어를 지혜, 노련미, 숙련자와 동의어의 개념으로 보기도 한다. 필자도 퇴직자의 다양한 경험과 지혜는 노마지지(老馬之智)라고 단정한다.

산업화의 횃불이었던 젊은이들이 이젠 퇴직자의 위치에 서 있다. 울산공단 퇴직자만만 해도 연간 4천명에 이른다. 산업화세대(1954년생까지)에 이어 베이비붐세대(1955∼1963년생)의 퇴직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는 총론은 당연한 것이고 이젠 이들 퇴직인력들의 재취업과 귀농 지원을 위한 방안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 또 베이비부머들을 위한 각론에도 밑그림을 그려야한다.

노마(老馬)의 지혜(智慧)를 활용하기 위해 정치권과 중앙 및 지방정부가 서로 머리를 맞대야 할 시점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빈곤층과 중산층의 대립이 화두였지만 지금은 중산층마저 붕괴돼 버린 상태다. 잘나가던 의사, 변호사, 교수, 교사 등 지식노동자들마저 휘청거리기 시작하면서 국민의 상당수가 미래에 대한 확신을 잃은 채 비틀거리고 있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했다 해서 ‘3포 세대’로 불리고 있는 그들의 자식들은 스펙 쌓기와 일자리 전쟁에 치여 인간관계와 내 집 마련마저 포기한 ‘5포 세대’로 진화하는 중이다.

감동과 분노는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다. 대한항공 ‘땅콩 회항’의 조현아 에게 우리국민들은 크게 분노했고 결국 이 사건은 반 재벌정서 확산으로 이어졌다.

이렇듯 2015년에는 사소하고, 작은 실수에도 분노가 폭발하는 일들이 잦아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분노는 좌절과 희망을 꺾는 원동력이다. 특히 이성을 잃은 분노는 갈등과 무질서를 가져 온다.

지난해 우리는 그런 장면을 곳곳에서 목격했다. 한번 경험한 만큼 새해에는 ‘늙은 말의 지혜’로 이런 갈등과 시련을 극복해 내야 한다. 아무쪼록 새해에는 분노가 사라지고 감동이 늘어나는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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