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로토프 칵테일’
‘몰로토프 칵테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1.04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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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울산 정치권의 좌장이었던 최병국 전 국회의원이 술자리에서 어김없이 내놓는 술은 ‘오십세주’였다. ‘백세주’와 소주를 절반씩 타서 제조한 일종의 ‘칵테일’이다.

정갑윤 국회부의장이 요새도 즐기는 음주 방식은 이른바 ‘반탕(反湯?)’이다. 그는 여러 사람들과 오래 어울리는 데는 이만한 것도 없다고 귀띔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서로의 건강을 생각해서 맥주잔에다 술을 반만 채운다 해서 지어낸 말일 뿐 소주와 맥주를 일정비율로 섞어서 제조하는 ‘소맥(燒麥)’으로 불리는 ‘칵테일’이란 점에서는 대동소이하다.

정 부의장 문하에서 주도를 익힌 탓인지 박영철 울산시의회 의장은 즐겨 찾는 술로 ‘소맥’을 손꼽는다. “참 맛있다”고 공언할 정도로 박 의장은 ‘소맥’이란 칵테일의 애호가다.

‘칵테일(cocktail)’이란 명칭의 유래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 모양이다. 1795년경 미국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로 이주해온 ‘A.A.페이쇼’라는 약사가 달걀노른자를 넣은 음료를 조합해서 프랑스어로 ‘코크티에(coquetier)’라고 불렀다는 설도 그 중 하나다. 여하튼 칵테일을 두고 두산백과는 ‘여러 종류의 양주를 기주(基酒)로 하여 고미제(苦味劑)·설탕·향료를 혼합하여 만든 혼합주’로 정의한다. 즉 ‘2가지 이상의 술을 섞어서 만든 혼합주’인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생겨난 단어에 ‘몰로토프 칵테일’(Molotov cocktail)이란 것이 있다. 영어 대문자로 짐작할 수 있듯 ‘몰로토프’는 사람 이름이다. 2차 세계대전 초기인 1939년 8월 독일과 불가침 조약을 맺을 때 그는 ‘스탈린의 오른팔’ 역할을 하던 소련의 외상이었고,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탄 것은 핀란드를 침공한 그 해 11월 ‘겨울전쟁’(1930.11.30∼ 1940.3.13) 직후였다. 몰로토프, 그는 기만전술의 대가였다. 전쟁 전 그는 “핀란드인의 좋은 친구”라고 입버릇처럼 떠들어댔다. 소련 폭격기들이 핀란드를 맹폭하는 와중에도 “굶주린 핀란드 인민 여러분께 빵을 공수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능구렁이처럼 해댔다.

소련군 기갑부대가 파죽지세로 쳐들어오자 전쟁물자 부족에 허덕이던 핀란드군은 고심 끝에 무릎 칠만한 지혜를 하나 짜낸다. 효과적이고 값싸고 만들기 쉬운 수제(手製) 무기-’몰로토프 칵테일’을 개발해낸 것이다. 빈병에다 휘발유를 넣어서 만든 ‘몰로토프 칵테일’은 드디어 소련군 탱크 저지에 탁월한 효과를 발휘했고 소련군 탱크의 연료를 휘발유 아닌 디젤로 바꾸게 만든 계기가 됐다.

‘몰로토프 칵테일’이란 핀란드 국민들이 ‘소련 외무장관 몰로토프에게 주는 술(선물)’이라고 비꼬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었다. “평화 약속을 저버린 몰로토프에게 술이 아닌 휘발유를 병에 담아 돌려주자”는 응징의 선물이었던 것이다. 한데 재미난 것은 다양한 별칭이 따라 다니는 이 신종 수제 무기가 다름 아닌 화염병(火焰甁)이었다는 사실이다. 몰로토프 수류탄(molotov grenade), 몰로토프 폭탄(molotov bomb)이란 이름도 있는 ‘몰로토프 칵테일’의 별칭은 빈병 속에 들어가는 물질에 따라 휘발유 폭탄(petrol bomb), 벤젠 횃불(benzine torch)로도 불린다. 처음엔 장갑차나 탱크 같은 군사장비가 표적이었지만 우리나라에 들어와선 그 표적이 과격시위 진압에 나선 경찰로 바뀐 적도 있었다. ‘혼합음료’란 의미의 칵테일이 ‘화염병’이란 전투적 의미로 둔갑했다는 사실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혼합주(混合酒) 명칭을 굳이 ‘폭탄주’로 명명한 선견지명의 주당께선 혹여 칵테일이란 말뜻의 역사적 변천사를 알고나 지었는지, 그 점도 자못 궁금하다. 여하간 폭탄주는 새해에도 여전히 악명을 떨칠 것인지, 그 점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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