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년 새 아침이 밝았다. 누구에게나 새날은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밤이 지나면 새벽이 오고, 약속이라도 한 듯 붉은 해가 떠오르는, 연속된 날들의 의미와는 분명 다르게 자리매김한다. 그것은 낡고 묵은 것들과 서둘러 이별한 사람일수록 더욱더 절실한 새로움으로 스며든다. 누군가는 ‘초지일관(初志一貫)이란 단어를, 누군가는 ‘시종일관(始終一貫)’이란 단어를 마음속에 품고 새해 첫발을 힘차게 내디딜 것이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 모두들 몸과 마음을 하나로 모아 새로운 길을 열어 갈 준비에 분주한 그러한 시점이다.
늦깎이 등단으로 내가 문단에 발을 들여 놓은 지도 이제 6년째로 접어들었다. 길다면 긴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흘려버린 시간에 비해 문학적 성숙은 얼마나 이루어졌는지 자문해 보면, 선뜻 답할 수 없다. ‘가짜 시인’이 되지 않겠다는 굳은 각오로 시작했지만 여전히 ‘가짜 시인’의 명찰을 달고 있지는 않은지 의문이다. 자격에 대한 시비가 오가면 아마 목소리를 많이 낮춰야 할 것 같다.
몇 주 전 ‘문인의 자격’이란 칼럼에서도 밝혔듯이 새해에는 나를 포함, 이른바 ‘문인’의 범주 사람들이 특별한 각오를 다지는 해가 됐으면 한다. 창작의 ‘자유’와 그에 따른 ‘책임’을 함께 고뇌하며 진정한 문인의 길을 무겁게 걸어가는 모습이 펼쳐져야 한다. 어떤 세력이나 유행에 쉽게 휩쓸리지 않는 작가 특유의 창조적 정신이 빛을 발한다면 더 바랄 것 없겠다.
우리는 종종 문인들의, 이해할 수 없는 처신에 적지 않은 실망과 허탈감을 느껴왔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친일’의 길을 기웃거렸던 일부 선배 문인들이 끝내 그 오명을 벗지 못하는 현 시대에 이르러서도 아직 부적절한 처신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예가 더러 있으니 안타깝다. 특히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 정권에 아부(?)하는 듯한 글과 행동으로 일부 문인이나 단체가 망신을 당하거나 구설수에 오르는 일이 더러 있었다.
글은 그 사람의 철학이나 정신세계를 나타내는 소중한 표현 수단이다. 시인이 밤새워 고뇌한 한 줄의 시가 절망에 갇혀 몸부림치는 사람에게는 희망의 빛으로 다가갈 수도 있고, 소설가가 몸을 불살라 써 내려간 절절한 문장이 흔들리는 누군가에게 인생의 등불이 될 수도 있다. 글의 소중함이 이러할진대 문인의 사명은 망각한 채 그저 자신의 안일만을 위해 곡학아세(曲學阿世)의 길을 기웃거리는 문인들이 아직 존재한다는 사실에 쓴 입맛을 다시게 된다.
어느 시인의 일침(一鍼)을 다시 가슴에 새긴다. ‘함부로 시인이 되려고 해서는 안 된다. 하다가 안 되면 결국 가짜 시인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그런 사이비 시인이 너무 많아서 행복한 나라가 우리나라다. 그래서 참다운 상상력을 만나는 일이 쉽지가 않다. 혼선이고 뒤죽박죽이고 지루하고 무겁다’
<김부조 시인·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