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록위마(指鹿爲馬)
지록위마(指鹿爲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2.30 21: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는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다”는 뜻으로 사기(史記)의 진시왕본기(秦始王本紀)에 전하는 말이다.

진나라 말기 진 시왕이 중국의 남방을 순행하던 중 사구(沙丘)에서 죽음을 맡게 됐다. 당시 그를 수행하던 환관 조고(趙高)가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공고히 하고자 왕의 죽음을 알리지 않고, 왕이 남긴 유서를 조작해 지혜롭고 역량이 뛰어난 왕의 장자 부소(扶蘇)를 자결하게 만든 뒤 아직 연소하고 식견이 부족한 호해(胡亥)를 재위에 올려 조정을 장악한다.

조고는 자신을 따르는 모든 조정 대신들이 진심으로 자신을 따르는지 알아보기 위해 한 가지 꾀를 냈다. 어느 날 조회 석상에서 조고는 사슴 새끼 한 마리를 들고 와 “이것은 제가 구한 귀한 망아지입니다”라며 황제에게 선물했다. 황제가 보기에는 틀림없이 사슴인데 말이라 하니 이상해 “승상께서는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이것이 사슴이지 어찌 말입니까”라고 했다. 그러자 조고는 정색하며 “이것은 분명이 말입니다. 못 믿으시면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신하들에게 물어 봅시다”라고 제안했다. 이에 황제가 신하들에게 물었더니 당시 조고의 눈치를 보던 대부분의 신하들이 조고의 주장대로 ‘말’이라고 대답했다. 대답을 하지 않은 몇몇 신하들은 그날 궁궐 문을 나서자마자 모두 참수되고 말았다.

이같이 권력이나 이익에 사로잡혀 진실을 이야기 하지 못하고 사실을 왜곡하는 것을 일러 ‘지록위마’라 한다. 우리도 과거 군부 독재 시절 ‘지록위마’가 있었다. 당시 대한불교 조계종 종정으로 계시던 성철(性徹) 큰 스님이 신년 화두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법문을 했다. 당시 권력자가 산을 가리켜 물이라고 하면 너도나도 앞 다투어 산을 물이라고 쌍수를 들어 맞장구치던 인사들에게는 그야말로 정문일침(頂門一鍼)이 아닐 수 없었다.

오늘날 우리는 혼돈과 불확실성 속에서 목표의식을 상실한 채 그냥 세월에 떠밀려 살아가고 있다. 그 원인은 국정을 수행하는 정부는 물론 청치 하는 사람들의 독선과 아집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최근 통진당은 자칭 겉으로는 민주투사니 진보적 정당이라 자처하면서 속으로는 국기를 물란 시키는 이른바 ‘양머리를 걸어두고 개고기를 속여 파는 양두구육(羊頭狗肉)’식의 처신을 하다 급기야 법의 심판으로 정치사상 초유의 정당해산을 당했다. 또 북한을 다녀온 몇몇 인사들이 전국을 돌며 북한의 실상을 이야기 한답시고 그들의 삼대세습체제 놀음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들의 처지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이 북한 사회를 마치 안정되고 희망적인 곳으로 미화해 물의를 일으켰다. 한발 더 나아가 이를 주관했던 한 인사는 대통령을 법에 고발까지 하고 있으니,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다.

전국대학 교수들이 올해 정치·경제·사회의 현실을 규정하는 사자 성어로 ‘지록위마(指鹿爲馬)’를 선정했다고 한다. 이는 위정자를 비롯한 모든 정치인들이 국민들의 여론을 성실하게 수렴하고, 이를 정책에 반영시키는데 적극 노력할 것을 주문하는 것이다. 또 한편으론 국민들이 알아야 할 사안을 정확하고 명확하게 알리지 않고 개인이나 소속정당의 당리당략에 얽매여 진실을 왜곡하고 오도 포장하는 것은 마치 ‘사슴을 두고 말이라(指鹿爲馬)’고 말하는 것과 같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교수들이 이 사자성어를 택한 이유는 분명하다. 정치인들의 진실 왜곡이 국민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끝내 나라의 장래를 어둡게 만든다는 염려스러움에서 일 것이다.

<노동휘 성균관 자문위원>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