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주 유감
폭탄주 유감
  • 김정주
  • 승인 2014.12.28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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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 암울한 일제강점기의 지식인 현진건이 1921년 ‘개벽’에 연재한 단편소설 ‘술 권하는 사회’에 나오는 주인공 아내의 독백이다.

시대적 배경은 달라도 술 권하는 사회는 예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은 모양이다. ‘국민건강’을 빌미로 담뱃세 올리기에 그토록 독을 품던 정부도 술 이야기만 나오면 태도가 180도 바뀐다. 인체에 끼치는 해악(害惡)이 담배보다 덜하지도 않을 터인데 어찌하여 술에만 이토록 관대한고!

연말이면 술에 대한 ‘사용설명서’가 지면, 화면을 연이어 장식한다. 음주 기술에서 숙취 해소법에 이르기까지 안내는 친절하고 다양하다. 최근엔 식약처가 음주행태 보고서를 내고 격이 다른 안내를 시도했다. “연말연시 잦아지는 술자리에서 건강을 위한 음주 습관을 실천하고 조사결과에서 나타난 음주행태를 개선해 달라”고 전국의 주당들에게 당부한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음주 경험자의 55.8%가 폭탄주 맛을 보았고, 폭탄주 경험자의 96%가 ‘소맥’(소주+맥주)을 입에 대 보았다. ‘양폭’(위스키+맥주)은 34.4%, 소주+과실주는 2.6%, 맥주+과실주는 1.4%라 했다. 초창기 대세이던 ‘양폭’이 왕좌를 ‘소맥’에게 물려준 것이 이채로운 변화다.

우리네 음주문화를 비트는 ‘폭탄주’의 유래와 작명의 배경에 대한 단수의 정답은 없다. 주목할 만한 설(說)의 하나는 ‘아일랜드 이민자’와 ‘부두노동자’다. 폭탄주의 원조를 ‘Beer Whisky’로 단정 짓는 조종건 목사의 주장(2013.8)이 흥미롭다. “1846∼50년대에 병충해로 감자기근이 들자 수십만 아일랜드 농민들이 영어권으로 이민을 떠났다. 미국 동부 여러 주로 이주한 아일랜드인 부두노동자들이 고된 하루 일을 마치고 선술집에서 빨리 취하기 위해 맥주 머그잔에 스카치 한잔을 부어 마셨던 ‘Beer Whisky’가 폭탄주의 원조일 것이다.”

폭탄주는 가난한 양반들이 값싸게 빨리 취하기 위해 개발했을 것이란 그럴 듯한 가설이다. 어쨌거나 그는 폭탄주의 국내 유행 이유를 “주량을 과시하기 위한 남자들의 객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시각의 ‘폭탄주 원조’론도 있다. “미국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을 보면 맥주 가득 부은 잔에 버번위스키가 든 잔을 빠뜨려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고 회상한 한 칼럼니스트는 이런 가설을 내놓는다. “미 공군 조종사들이 폭탄주를 즐겨 마셨다고도 하고 이보다 훨씬 앞서 영국 탄광부와 뱃사람들이 시작했다는 말도 있다. 그들만의 폭탄주가 우리 술판의 술잔 돌리기와 결합하면서 토착화에 어지간히 성공했다. 위스키가 없으면 소주로라도 심을 박아 잔을 돌려야 직성이 풀리는 부류가 꽤 많다.”

사려 깊은 그의 다음 지론은 더 흥미롭다. “두 가지 술로 폭탄주를 만들고, 그 잔을 돌리고, 마신 사람은 빈 잔들이 딸랑딸랑 소리가 나도록 머리 위로 흔드는 폭탄주 술판은 개인을 집단에 함몰시키려는 의식(儀式)과도 같다.…주량만큼 개인차가 큰 것이 드문데도 우리 사회의 폭탄주 돌리기는 개인차를 인정하지 않는다. 술이 약한 사람에게는 집단 가혹행위나 다를 바 없다. 술이 센 호걸들의 호언과 과시가 질펀해지는 동안 술이 약한 사람은 초주검이 되어 간다.”

소설가 겸 언론인 황원갑씨는 데스크칼럼에다 이런 글을 남겼다. “자작(自酌)과 대작(對酌)의 여유로운 운치는 어느새 사라져버리고 이름도 무지막지한 폭탄주로 수작(酬酌)하는 무식한 막가파들이 나타나 강호를 종횡무진 난무하고 있으니, 장차 이 일을 어찌하랴.”

하 많은 사연의 폭탄주가 새해 을미년에도 술판에서 군림할지는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

<김정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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