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지만 현실이었던 2014년
슬프지만 현실이었던 2014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2.24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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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인들은 ‘시간’을 나타내는 단어로 ‘크로노스(Kronos)’와 ‘카이로스(Kairos)’를 썼다. ‘크로노스’는 하루를 24시간으로 보는, 거저 미래를 향해 진행하는 불연속적인 우연의 개념이다. 반면 ‘카이로스’는 구체적 사건의 특별한 의미가 담겨져 있으며 역사 저편에서 역류해 현실을 꿰뚫고 들어오는 시간이다. 그래서 크로노스적인 시간을 사는 사람에겐 지금이 관습적으로 달력의 마지막 장을 넘기며 ‘망년’과 ‘송년’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맞다. 하지만 양적인 크로노스의 시간을 질적인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승화시켜 살면 우리는 과거와 미래를 끌어안으며 상생하는 영원한 카이로스의 시간을 살 수 있을 것이다.

2014년은 참으로 힘든 한해였다. 신년 초 눈 더미 속으로 꽃 같은 대학생 청춘들을 떠나보냈다. 4월에는 수백 명의 어린 청소년들을 차가운 바다 속으로 보냈다, 그 뒤 이어진 군내 구타 사망사건은 국민의 안위를 지켜주는 군대를 오히려 국민이 염려하게 했다. 또 국가안보의 기반인 방위산업에서 온갖 비리와 부패가 터져 나왔다. 자원외교와 4대강 개발에서의 문제점은 또 전 국민을 실망시켰다. 어디 그 뿐 인가. 12월 초부터 불거진 소위 ‘십상시’는 한국 정치의 혼란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단면이었다. 게다가 케이블TV 드라마 ‘미생’은 ‘땅콩 회항’의 근본적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생생하게 보여 주었다. 그렇게 2014년은 우리의 무력함에 대한 우울함과 사회를 향한 분노를 표출하는 한 해였다.

우울함과 폭력은 얼핏 상반돼 보이지만 바탕에 항상 분노가 자리 잡고 있다. 그 분노가 자기 자신을 향할 때 우울해지고 분노가 타인에게 전가되면 폭력으로 나타난다. 또 분노의 시작에는 항상 억울함이 있다. 억울함은 옳고 그름을 둘러싼 정의와 진실의 문제이다. 억울함이 항상 진실일 수는 없으나 억울함은 항상 패배한 ‘미생’들의 전유물이다. 그래서 인생에서 억울함만큼 억울한 일도 없다. 2014년 한해 동안 대한민국이 그랬다. 일 년 내내 누가 잘못했느냐를 두고 그 책임소재에 대한 시시비비를 따지며 책임 있는 자의 사과와 그 사과의 진정성에 대해 일 년 동안 난타전을 벌였다.

얼마 전 우리나라 교수사회가 올해 대한민국을 규정짓는 사자성어로 ‘지록위마(指鹿爲馬)’를 꼽았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일컫는 것’을 뜻하는 이 사자성어는 ‘고의적으로 옳고 그름을 섞고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당초에는 중국 진시황 사망이후 윗사람을 농락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었으나 지금은 흑백이 뒤바뀌고 진실이 호도되는 것을 가리킨다. “2014년은 수많은 사슴들이 말로 바뀐 한 해였다. 온갖 거짓이 진실인 양 우리사회를 강타했다. 우리사회 어느 구석에서도 말의 진짜 모습은 볼 수 없었다”는 교수사회의 일침이 우리를 너무 아프게 한다. 그 외에도 ‘삭족적리(削足適履, 발을 깎아 신발에 맞춘다는 합리성을 무시하고 억지로 적용한다는 비유)’, ‘지통재심(至痛在心, 지극한 아픔에 마음이 있는데 시간은 많지 않고 할 일은 많다는 의미)’ 등 사회 곳곳에서 나온 사자성어들도 우리의 2014년 카이로스적 시간들을 회상하고 성찰하게 만든다.

어느 역사학자가 트위터에서 “반성은 인간의 덕목이며, 변명은 인간되기 어려운 자들의 습관이고 적반하장은 짐승만도 못한 자들의 특기이다”라고 했다. 역사는 과거를 통해 미래를 학습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2014년을 ‘크로노스’적 시간 개념 속에서 가볍게 ‘망년’하고 ‘송년’할 수가 없다. 대답 없는 수많은 질문들과 왜곡된 진실들, 이로 인한 분노와 억울함들을 2015년에는 하나하나씩 풀어 나가야 한다. 그래서 2015년에는 우울함도 분노도 폭력과 갈등도 사라지고 정의와 진실, 그리고 막힘없는 소통이 강물같이 흘러가는 개꿈(?)을 꿔 볼 생각이다.

<송진호 울산YMCA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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