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용접분야는 사람 없어 야단
배고파 사람 해치는 세태 이해 안돼”
“특수용접분야는 사람 없어 야단
배고파 사람 해치는 세태 이해 안돼”
  • 정종식 기자
  • 승인 2014.12.23 2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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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규 울산 용접 직업학교 교장
강원도 정선 산골소년의 홀로서기… 올해 직업능력개발 ‘국무총리상’ 수상
▲ 유명규 울산 용접 직업학교 교장.

“멀쩡한 20대 젊은이가 일주일 동안 굶어 배고파 사람을 헤쳤다고 해요. 나로선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밖에 나가면 할 일이 많잖아요. 용접 일당이 10~15만원인데 일자리가 수두룩 합니다” 그는 강원도 정선읍에서도 한참 더 들어가는 산골 출신이다. 그런 산골에서 태어나 2003년 용접 기능장이 되기까지 산전수전(山戰水戰)을 다 겪었으니 요즘 젊은이들의 행태가 그에겐 그리 달갑지 않을 법도 하다.

1984년 12월 말, 중학교 졸업을 앞 둔 16살짜리 까까머리 소년이 강원도 정선에서 제천행 밤기차에 올랐다. 칠흑 같이 어두운 겨울밤, 야간열차를 타고 두어 시간 달린 끝에 제천에 도착한 그는 중앙선 열차로 갈아타고 울산으로 향했다. 그가 수중에 지닌 건 아버지가 여비조로 준 1만원이 전부였다. 울산 용접직업전문학교 유명규(사진)교장의 30년 타향살이는 그렇게 시작됐다.



그는 10남매 중 여덟번째다. 위로 층층이 형과 누나가 있어 고등학교 진학은 애당초 포기했다. 그래도 그는 중학교 시절 성적이 줄곧 상위권이었다고 한다. 학과시험을 거쳐 높은 경쟁률을 뚫고 현대중공업 실습생 시험에 합격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유 교장은 중 3 재학 중이던 84년 11월, 현대중공업이 실시한 산학협력과정 선발시험에서 16대 1의 경쟁을 뚫고 실습생으로 선발됐다. 그리고 다음해 2월 중공업이 실습생을 위탁 교육시키는 울산직업훈련원에 들어가 사회 초년병이 됐다. 직업 훈련원은 3년 과정. 1학년은 교과 교육만 받는다. 2학년 때부터 현장실습과 교과 학습을 병행한다. 요즘으로 치면 ‘일·학습제’와 비슷한 것이다.

“1학년 때 용접기사 2급을 땄습니다. 첫 월급으로 5만5천원을 받았죠. 당시 회사원 한 달 봉급에 비하면 보잘 것 없었지만 나에겐 큰 돈이었습니다” 훈련원에서도 그의 악바리 기질은 여지없이 드러났다. 실습시간이 끝난 뒤에도 용접에 매달려 그는 동기들보다 1년 앞서 기능사 1급을 획득했다. 3학년 때 1급을 따야 하는데 2학년 때 미리 따버려 막상 3학년이 되자 교과과목을 수강할 필요가 없게 됐다. 그래서 현대중공업에서 현장실습 9개월을 마친 뒤 3개월 동안 고향에 ‘휴가’를 갔을 정도다.



1985년 훈련원 2학년 때 정식 사원이 돼 그는 93년까지 현대 중공업에서 근무하다 퇴사했다. 이유를 묻자 노동운동 때문이었다고 했다. “당시 근로자 임금은 시간 당 5백15원이었습니다.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였죠. 근로환경은 말할 것도 없고요” 그가 근로자 선봉에 섰기 때문에 그 때부터 시시때때로 ‘사무실’에서 오라 가라했다. 그래서 미련 없이 떠났다고 한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그는 가난 때문에 못 다한 학구욕을 만끽했다. 현대공고 야간 기계과를 거쳐 울산과학대(당시 전문대) 공업경영과를 졸업했다.

중공업을 떠나면서 유 교장은 자립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94년 첫발을 내디딘 것이 용접학원 강사였다. 그 시절 부인 홍명희(43세)씨를 만나 96년 결혼했다. 그런데 신혼의 단꿈도 잠시, 그는 학원을 그만 둬야 했다. 1개월 동안 직업훈련교사 집체교육을 받으러 창원기능대학에 입교하려하자 학원에서 ‘아예 사표를 내라’고 했기 때문이다. “세상 인심 참 야박하대요. 1개월 자리를 비운다고 나가라고 합디다” 그는 창원기능대학 훈련교사 과정 1기 졸업생이다. 직업학원은 대졸자이면 누구든지 강의할 수 있지만 고용노동부 산하 직업학교는 훈련교사 자격증이 있어야 한단다. 교사과정을 마친 뒤 일정한 직업이 없던 그는 현장근무로 전전했다. 96년 SK 건설, 월성원전 건설에도 참여했다.

▲ 훈련중인 호주 시민권자 윤석홍씨(사진 오른쪽).

창원기능대학 훈련교사 과정을 마친데다 이미 용접기사 1급 자격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현장근무 수입은 꽤 짭짤했다. 하지만 가정을 가진 그에겐 안정적인 직장이 필요했다. 97년 중구 우정동에 용접학원을 냈다. 그런데 그 때 마침 IMF가 터졌다. “이제 망했구나 생각했습니다. 학원 차리느라 이리저리 돈을 빌려다 썼고 은행대출까지 낸 상태였거든요” 하지만 그에겐 IMF가 오히려 행운을 가져다 줬다. 해고자가 대량 발생하면서 용접실습생들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당시는 자비(自費)로 다니는 일반생과 국비 지원을 받는 국비실습생으로 나눠져 있었습니다. 일반 실습생이 훨씬 많았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국비지원 쪽으로 실습생들이 몰렸고 고용노동부 지침에 맞춰 국비지원을 받으려면 시설, 장비를 확충해야 했다. 또 사설 학원으로 국비실습생을 수용하는데는 제약과 제한이 많았다. 그래서 유 교장은 2012년 지금의 자리로 옮기면서 고용노동부로부터 아예 직업전문학교 인가를 받았다.

용접은 티그(tig), 미그(mig), 가스(Co2), 아크(arc) 등 4 종류가 있다. 이중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게 ‘티그’ 용접이다. ‘미그’나 ‘가스’는 주로 철판용접에 사용되기 때문에 배우기가 쉽다. 요즘은 또 이 분야에 자동 용접기가 나와 이전 보다 선호도가 떨어진다. 반면 ‘티그’를 사용해야 하는 배관 용접은 고도의 정밀도와 수작업이 필요하다. 이 분야에선 한국 기술이 세계 최정상급이라고 한다. 호주, 캐나다에서 온 사람들이 울산용접전문학교를 찾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22년 전 호주로 건너간 윤석홍(54세)씨가 그 예다. 그는 호주시민권자인데 ‘티그’부분 훈련이 더 필요해 현재 유 교장의 지도를 받고 있다. 윤씨의 말에 의하면 호주는 수강료가 비싼데다 수련기간이 긴 반면 한국은 3~4개월 만에 수료할 수 있어 호주, 캐나다 쪽 사람들이 한국을 선호한다고 했다. 실제로 올해 울산용접직업전문학교를 거쳐 간 실습생 800여명 중 5명이 외국인이다. 지금까지 모두 30여명이 이곳을 거쳐갔다는 게 유 교장의 설명이다.

“지금도 티그 분야는 사람이 없어 못 구합니다. 중공업이 선박건조에서 해양플랜트 쪽으로 옮겨 가지 않습니까. 플랜트에는 ‘티그’ 배관용접이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일자리 없어 놀고 있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는 다시 일자리 창출 쪽으로 말을 돌렸다. 울산용접직업전문학교는 올해 ‘직업능력개발 유공자표창’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요즘 청소년들 무조건 대학 진학하는 철부지들이 아닙니다. 현재 17살짜리 고등학생이 교육받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젊은이들에 대한 아쉬움도 토로했다. “똑같이 취업해도 20~30대 보다 50대가 더 오래 버팁니다. 아직 세상 물정을 몰라서 그렇죠. 젊은 층은 보기 좋은 곳만 찾아 나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17살 직업훈련원 시절을 회고하는 듯 했다. 또 호주나 캐나다는 의사, 변호사보다 용접사가 더 우선이란 말도 잊지 않았다.

글=정종식 기자·사진=김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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