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놔두게. 그도 프랑스야!’
‘그냥 놔두게. 그도 프랑스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2.21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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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청구인 통합진보당을 해산한다. 피청구인 소속 의원들의 의원직은 상실한다.” 통합진보당이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의 얼음장 같은 주문 낭독에 때맞춰 창당 3년 만에 깃발을 내렸다. 2014년 12월 19일. 이날은 ‘비선실세 문건’ 파동으로 고심하던 집권여당이 표정관리를 하며 맞이한 ‘대선승리 2주년 기념일’이기도 했다.

같은 날 오후 2시, 통합진보당 울산시당사(남구 신정2동 이원빌딩 9층)는 ‘침통’ ‘암울’ ‘비장’이란 용어로 가득 찼다. 온기마저 사라진 을씨년스런 분위기. 전날 급히 만들었던 ‘울산원탁회의’의 구호 ‘강제해산 반대, 민주주의 수호’는 졸지에 절반은 생기를 잃었다. 회견문 제목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죽었다”는 반향 없는 절규로 들렸다.

이영순, 이은주, 천병태, 이효상…. ‘지역 제1야당’ 지도부 인사들은 감정을 애써 자제하고 있었다. 임상호, 강성신, 권필상, 권정호…. 주요 고비마다 품앗이로 진보당을 도왔던 진보진영 인사들도 허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정의당 부위원장, 노동당 사무처장, 새정치연합 정책실장도 애석함을 같이 나눈 시당 교육관은 ‘암담하고 비참하고 참담한’ 분위기가 무겁게 지배하고 있었다.

기자회견 시작과 함께 사회자가 비분강개한 어조로 말문을 열었다. “오전 10시부터, 아니 1년 전부터 초미의 관심사였다. 결국 해산 결정이 나고 말았지만, 이건 진보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십 년 가꾸어온 민주주의가 사망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이영순 전 국회의원이 모두발언에 동참했다. “박근혜 정권이 출범 후 최대의 위기를 모면하려고 밟은 수순이다. 단결된 힘으로 막아내지 못해 아쉽고 또 분하다.” 이은주 전 시의원은 분노를 나타냈다. “민주주의의 시계를 멈춘 이번 조치, 박근혜 정부의 무덤이 될 것이다.”

천병태 전 시의원과 이효상 시당 대변인(중구의원)이 말문을 열었다. “이름은 사라졌지만 노동자와 서민, 진보와 혁신을 향한 발걸음까지 멈추진 못할 것이다.” 정의당 곽선경 부위원장이 위로의 말을 건넸다. “적색 신호로 잠시 멈춰 서긴 했지만 곧 푸른 신호로 바뀔 테니, 다들 힘내시라!”

당을 잃은 사람들이 귀엣말로 전하는 SNS 메시지가 있었다. 어느 당원이 띄운 것이라 했다. “…정당해산 심판까지 그 짧은 시간,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1970년 박정희 시대로 회귀했다. 이 모든 일이 불과 2년 만에 일어났다. 해산 선고에 우리는 눈물을 흘리지 말자. 노동자·농민·중소상인·서민들의 삶을 지켜줄 보루가 되지 못한 우리 실력에 외려 무릎 꿇고 시민들께 사죄드리자.…당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만 일하는 사람을 위한 우리의 행보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매서운 2014년 겨울, 노동자·서민의 삶 속으로 우리는 다시 걸어갈 것이다.”

비슷한 시각, 새정치연합 심규명 시당위원장이 페이스북에 소감을 올렸다. “불길한 예감이 사실이 되고 말았다.…이석기와 다른 생각을 하는 당원들에게 정당해산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다.…이석기를 벌하려고 진보당을 해산한 것은 빈대를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태운 것과 같다.”

한 여성 팬이 댓글을 올렸다. “드골 대통령 시절 프랑스의 식민지 알제리가 독립전쟁을 일으켰고 프랑스의 대표적 지성 사르트르는 말과 글로 식민지의 반인간성, 반역사성을 강력하게 외쳤다. 독립지원금 전달책을 맡기까지 했다.…법적으로 제재해야 한다는 소리가 드골 측근들의 입에서도 나왔다. 드골은 이렇게 간단히 대꾸했다. ‘그냥 놔두게. 그도 프랑스야!’

<김정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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