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의 나라
어르신들의 나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2.21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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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생이 버스 안에서 졸고 있었다. 버스 안은 하교 길과 퇴근길이 맞물려 복잡했다. 졸고 있는 학생 앞에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라고 부르기에는 이른 아저씨가 서 있는 사람들을 밀치고 그 여학생 앞에 섰다. 여학생은 어른이 앞에 서 있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거운 가방을 베게삼아 끌어안고 계속 졸고 있었다. 갑자기 버스 안이 웅성거렸다. 그 남자는 졸고 있는 학생을 향해 어른이 앞에 서 있는데도 버르장머리 없이 앉아 있다며 호통을 치고 있었다. 아이는 자다 말고 날벼락 맞은 사람마냥 놀란 표정으로 일어섰다.

일어서는 여학생의 몸은 무거운 가방과 함께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보였다. 어르신은 여학생의 아래위를 훑어보더니 혀를 끌끌 차며 털썩 앉았다. 그 자리는 노약자석도 아니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여학생을 안타깝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얼마 안 가서 남자가 내리고 자리가 비어도 여학생은 그 자리에 앉지 않았다. 적어도 그 버스 안의 남자는 어르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갑의 위치에서 군림하지 않았을까. 손녀 뻘 되는 여학생의 고단함은 아랑곳 하지 않고, 덧붙여 누구하나 입을 뻥긋 못했으니 말이다.

작은 모임에서 한 달에 한번 무료급식소 봉사를 하고 있다. 봉사자들이 두어 시간 음식을 만들면 11시 30분부터 배식이 시작되고 100원을 내고 미리 번호표를 받아간 어르신들이 줄을 서기 시작한다. 어림잡아 밥을 먹는 사람들이 200명 가까이 될 듯 했다. 배식을 하면서 의문이 들었다. 급식소 취지에 맞는, 정말 끼니를 못 챙겨먹는 노인들은 생각만큼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업복을 입은 채로 점심 한 끼를 때우는 늙수그레한 아저씨들도 있었고 요양보호사가 간병하는 노인을 모시고 와서 식사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멋쟁이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일부이긴 했지만 봉사자들에게 약간 미안해하면서 얼른 밥을 먹고 나가는 사람들도 몇몇은 있었다.

냉정하게 말해서 이곳에서 식사를 하는 어르신의 20% 정도는 공짜 밥을 먹을 필요가 없는 사람들로 보였다. 그 어르신들은 한 끼 밥값 아끼자고 정작 못 먹고 사는 사람 밥그릇 빼앗는 줄은 모르고 있을까. 알면서도 어르신들에게 먹는 것 가지고 서러움을 안주려는. 우리에게 아직은 동방예의지국 문화가 살아있음을 위안으로 삼을 수밖에.

단적인 예지만 위의 두 경우는 먹고 살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노년층의 자화상의 한 단면은 아닌지. 산업화의 주역이라고 떠받들던 어르신들의 소소한 일상의 모습들이 세대 간 불통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 언제부턴가 어르신들의 삶의 지혜와 경험, 끈질긴 인내심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 버렸음을. 나부터 이들의 경험과 경륜은 잔소리로 인내심은 옹고집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누구나 노인이 된다. 외로움과 질병에 시달리거나 독거노인으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 벌써 한 해가 저물고 나 또한 저물어간다. 미래를 알 수 없듯이 노년의 모습을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나는 이미 고령화 세대의 공범이 되어있다. 살아온 시간들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어쩌면 안하무인과 몰염치로 삶을 이어갈지도 모를 내 노년의 모습이 한 해가 지나가는 길목에서 우울한 그림자로 어른거린다.

<박종임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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