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개혁은 속도보다 민주적 절차가 우선
규제개혁은 속도보다 민주적 절차가 우선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2.21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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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단두대’를 언급하며 규제를 개혁하겠다고 했지만 오히려 국민들의 안전이 단두대에 올라가는 형국이다. 지난 1일 정종섭 행자부장관, 서병수 부산시장, 김기현 시장 공동주재로 ‘행자부-부산-울산 규제개혁 끝장토론회’가 울산시청 시민홀에서 열렸다. 현 정부가 기업 입장에서 규제철폐에 드라이브를 걸다보니 정책이 기업이익 쪽으로 흘러가듯이 이날 토론 내용도 시민들의 안전보다 기업이익을 위해 집중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이날 거론된 주제의 핵심은 각종 환경과 관련된 내용들로 이런 규제들이 왜 생겼는지, 또 시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 지를 검토해야 함에도 규제철폐의 건수 올리기에만 열중하는 모습이었다.

이날 주요하게 논의된 내용을 보면 ‘중수도 시설을 이용해 공업용수 사용하는 제지업체의 경우 사용하는 공업용수 기준을 완화해 달라는 요구’, ‘신재생에너지 고형연료 사용하는 열병합발전소 설치해달라는 요구’, ‘벙커씨유와 LNG 병행 사용 시 이산화황 배출기준을 현행 LNG 배출기준(100ppm)이 아닌 벙커씨유 배출기준(180ppm) 적용해 달라는 요구’ 등이다. 특히 고형연로나 대기배출시설 기준완화는 대기오염이 여전히 심각한 울산의 경우 민감한 사안일 수밖에 없다.

신재생에너지 고형연료는 이름과 달리 폐플라스틱이나 폐목재를 환경적으로 재료의 성질이 변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펠릿모양 그대로 가공만 하는 것이다. 따라서 플라스틱의 유독성은 그대로 남는다. 폐목재의 경우도 순수한 목재만 사용하면 문제가 크지 않으나 공장이나 건설현장에서 사용된 기름에 찌든 목재의 경우 연소과정에서 폐플라스틱과 마찬가지로 유해화학물질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탈황, 집진장치 등을 갖추고 사용하면 배출기준을 초과하는 유해화학물질은 TMS을 이용해서 관리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작년에 일부 업체가 TMS를 조작해 검찰조사를 받을 때까지 울산시가 관리하지 못한 점이나 아직 모든 유해화학물질을 점검할 수 없는 현실을 감안하면 사후관리보다는 보다 깨끗한 연료를 사용하도록 사전 조치를 취하는 게 시민의 안전에서 더 유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기체연료와 액체연료의 이산화황의 배출기준을 동일하게 책정할 경우 황 이외에 다른 오염물질의 농도는 연료마다 차이가 있기 때문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공업용수 사용완화가 수질문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폐플라스틱이나 오염 목재 등에 대한 배출기준 완화가 얼마나 대기를 더 오염 시킬지 그리고 이런 이유로 치러야할 사회적 비용은 얼마나 될지, 기업에는 이익이 되겠지만 사회 전체로 보면 어떤 손해를 초래할지에 대한 충분한 고려도 필요하다.

환경질환으로 고통 받고 그로인해 경제적 피해를 볼 시민들의 입장은 경제 활성화라는 주장 앞에서 별 의미가 없는 듯하다. 규제철폐로 인한 기업의 1천300억원 효과가 우리의 삶과 질을 담보로 하는 것이라면 과연 이런 규제 철폐가 옳은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규제는 나쁜 것이라는 획일적 인식으로 우리의 삶을 보전할 규제마저 거둬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봐야 한다.

최근 경제난을 이유로 법적으로 제한하고 있는 무연탄 같은 고체연료를 허용해 달라는 기업들의 요구까지 있는 실정이다. 법은 사회의 최소한의 기준이며 사회공동체가 합의한 최소한의 규범이다. 환경문제와 관련해 만들어 놓은 최소한의 법조차 기업 이익을 위해 규제철폐라는 이름으로 없애는 것이 과연 정당한 일인가?

기업의 이익을 위해 속도전으로 이뤄지는 정부의 규제개혁을 멈추고 우리 사회가 동의할 수 있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필요하다면 경제와 환경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권필상 울산시민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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