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甲)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
갑(甲)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2.18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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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갑(甲)은 새싹이 싹트면서 아직 씨앗 껍질을 뒤집어 쓰고 있는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다. 그것은 처음 또는 제일의 뜻을 갖고 있다. 사람으로 치면 머리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처럼 좋은 의미의 단어에 어떤 행동을 뜻하는 접미사인 ‘질’을 붙이므로 인해 권력의 우위에 있는 사람이 약자에게 행하는 부당행위를 통칭하는 나쁜 개념이 되어버린 것이다.

최근 ‘땅콩 회항’ 대한항공 사태로 전국이 시끄럽다. 대다수 사람들은 대한항공 조 부사장의 속칭 ‘갑질’을 기정사실로 여기는 듯하다. 돌아보니 올해는 갑으로서의 품격을 지키지 못해 언론을 장식했던 사건들이 유독 많았다.

삼국지의 명장 장비는 기한내 업무를 완수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부하장수 범강과 장달을 채찍질하여 반송장으로 만들어 버렸고, 원한을 품은 범강과 장달에 의해 암살당하는 비운을 맞게 된다. 고려 의종 24년 정중부 등이 국왕의 보현원 행차에서 문관들에 대하여 피비린내나는 살육을 한 무신의 난도 문관들의 갑질이 그 원인이라 할 만하다. 고려초 최고의 문신 김부식의 아들 김돈중이 대장군 정중부의 수염을 촛불로 태운 것이 그 발단이었으니 말이다.

갑질 때문에 천수를 누리지 못하는 일도 있고, 국가 권력이 송두리째 바뀌는 일이 있음에도 그러한 일들이 없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근본 원인은 권력자들의 과시욕 또는 개인 역량과 조직의 힘을 혼동하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한마디로 자기 자신을 너무 잘난 사람으로 평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약자를 하인 부리듯 대하고, 손윗사람에게 반말을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경우는 통제수단이 없는 경우다. 선거 외에는 통제할 방법이 없는 국회의원님들, 내부적 통제 외에는 견제수단이 없다고 보아도 무방한 판사와 검사, 기업 내에서는 신적인 존재라 할 수 있는 재벌과 그 가족들. 우리가 그들의 잘못된 행태를 ‘슈퍼갑’이라고 부르며 조롱하는 것도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현재 대한항공 사무장이나 승무원은 심각한 스트레스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있다고 한다. 당시 사무장이 받았을 인간적 모멸감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마음 속 깊은 곳에 원한의 마음을 품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고, 사랑하는 가족이 떠올랐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앞날에 대한 걱정도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갑들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점이 있다. 내 앞의 그들이 언제나 약자인 채로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을들의 반란으로 인해 역사의 흐름이 바뀔 수도 있다. 한 번의 실수로 인해 대한항공 전체가 큰 위기에 있다. 잘못된 조 부사장의 처신과 연이은 거짓 변명으로 인해 대한항공의 위기가 더 커진 측면도 있다. 그러나 지금도 늦지는 않다. 대한항공은 증거를 인멸하고 증인을 회유하기에 앞서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의미있는 사과를 하길 바란다. 우리도 상대의 본심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우리의 그러한 능력을 과소평가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대한항공 관계자나 조 부사장은 그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라는 말이 있다. 우리도 그와 같은 좋은 의미로 ‘갑(甲)’을 사용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내 앞의 상대가 내 누이이거나 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자. 새해에는 “당신이 진정한 갑입니다”라는 칭찬 하는 일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장문수 법무법인 우린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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