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가야사, 그 새로운 미래를 위해
소외된 가야사, 그 새로운 미래를 위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2.17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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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칼’ 연재를 끝내며 / 작가 이충호

가야사는 우리의 역사에서 소외되어왔다. 왜곡되고 축소되었다. 식민지 사관의 영향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와 같이 가야사를 소홀이 다룬 역사서의 영향도 컸다고 본다. 그러나 옛 가야 지역에서 상상을 뛰어넘는 유물과 유적이 발굴되고 사료가 확보되면서 가야사는 새롭게 인식되기 시작했고 그 역사도 새롭게 쓰여지고 있다.

<제국의 칼>은 새로운 역사의 관점에서 쓰여진 소설이다. 다라국(多羅國)은 후기 가야 12국 중에서 가장 늦게 멸망한 것으로 여겨지는 소국이다. 일본서기(日本書紀)와 양직공도(梁職貢圖)에 기록이 전해지고 있었으나 그 실체가 확인되지 않았던 다라국은 합천 옥전(玉田) 고분군에서 그 유물이 대거 출토되고 사료가 확인되면서 그 실체가 드러난 국가이다.

그러나 다라의 역사는 아직 미궁의 상태다. <제국의 칼>, 이 소설은 실체가 아직 확실하지 않은 다라국 역사와 후기 가야 제국(諸國) 역사의 줄기를 세우려는 노력에서 쓰여진 소설이다. 가야사를 부분적으로 다룬 소설을 한, 두 권 있지만 후기 가야사를 본격적으로 다룬 소설은 아직 없다. 더구나 신역사의 관점에서 가야사나 그 멸망의 과정을 다룬 소설은 없다. 그래서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 이 분야의 최초의 소설을 쓰는 개척의 자세로 이 소설을 썼다. 사료가 부족하여 어려움이 있었으나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것은 오히려 소설을 쓰는 일을 더 의미 있게 해 주었다.

E. H. 카아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역사 소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소설가는 사학자와 마찬가지로 행간이 지워진 역사의 기록을 다시 잇는 정신으로, 사료와 사료 사이에 보이지 않는 부분을 복원하는 정신으로 역사소설을 써야 한다는 생각을 이 소설을 쓰는 동안 한시도 잊지 않았다.

소설이란 이름으로 사료를 왜곡하는 것은,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왜곡하는 것은 역사를 부정하는 일이며 역사를 훼손하는 행위다. 극적 재미를 위해서 역사를 왜곡할 수 있는가? 한 마디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본다. 소설가는 역사의 보이지 않는 행간은 자신의 상상과 픽션으로 그려내는 것은 가능하다. 그것이 소설이다. 그것은 문화를 풍성하게 만들고, 역사를 살찌울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엄연한 기록을 허구란 이름으로 왜곡해서는 안된다. 더구나 팩션(faction)이나 판타지라는 말로서 왜곡해서는 더욱더 안된다고 생각한다. 소설이 역사를 왜곡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팩션이나 역사 판타지는 실명이 사용되지 않을 때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본다.

이런 저런 작금의 역사소설의 문제점을 생각하면서 이 소설을 썼다.

처음부터 한 회도 빠뜨리지 않고 다 읽었다는 독자들도 많았다. 주변에서 다양한 반응을 보여주어서 소설을 쓰는 동안 외롭지 않았다. 성원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귀중한 지면을 할애해준 울산제일일보에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더 깊이 있는 다음 소설로써 그 성원에 보답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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