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만든 직선, 자연이 만든 곡선
인간이 만든 직선, 자연이 만든 곡선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2.15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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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생(dessin)이란 미술 용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소묘 그림이다. 데생 작품은 연필이나 펜 등으로 무수히 많은 직선들을 이용하여 예각을 다듬는 교차와 중첩의 작업을 통해 사물의 형태, 깊이, 느낌을 표현하는 미술 장르이다.

서양미술은 19세기 이전 고전주의시대 종교적 아카데미적인 전통이 자유분방한 표현을 억누르고 있었던 반면에, 19세기 말 사회발달과 발전에 대한 기대심리가 증대함에 따라 진보적 분위기에 대한 예술적 개인주의가 생겨나며 변화된 욕구가 데생의 표현방식을 가속화시켰다. 이후 미술의 표현방식의 하나로서의 데생은 다양함과 풍부한 표현력을 갖추게 되며 추상의 세계로 더욱 발전한다. 회화나 조각 작품의 예비 습작으로서의 데생이 독립적으로 예술성을 인정받게 되었다.

데생 화가들은 신문에 일종의 삽화를 기고하면서 사회문제의 증인으로서 사회의 변화를 자신만의 풍부한 감성을 담아 표현해왔으며 카툰으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탐구 속에는 세상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때론 의미심장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화가들의 열정이 있었다. 데생은 당시 화가들이 소홀히 할 수 없었던 중요한 생계수단이기도 했으며, 작가들은 데생 화가들이 그린 삽화로 자신의 글이 더욱 부각될 수 있었다. 이렇듯 데생 작품을 구성하는 소재는 펜과 직선이라고 할 수 있다. ‘선’을 구성하는 것은 무수한 ‘점’들이며 점과 점을 잇는 것은 선이다. 따라서 직선의 근원은 곡선에서 온다고 믿고 있다.

‘훈데르트바서’는 ‘직선은 신의 부재이다’라고 했으며, ‘니체’는 ‘모든 진리는 휘어져 있다’라는 말로 인간이 만들어낸 ‘직선’과 신이 만들어낸 ‘곡선’을 상징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직선은 ‘강직함, 곧음, 빠름, 인위적’ 등으로 곡선은 ‘부드러움, 완만함, 느림, 자연스러움’ 등의 의미로 대비되기도 한다. 법정스님은 직선을 “조급, 냉혹, 비정함”,곡선을 “여유, 인정, 운치”이란 속성으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현대사회는 직선의 논리가 대세이다. 우열을 가리기위해 줄을 세우고, 오솔길보다 빠른 지름길을 찾고, 개울이나 강을 직선화하고, 산은 직선터널로 관통하고 있다. 건물은 반듯하게 더 높이 쌓아올리고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의 수직선상의 공간을 엘리베이터로 빠르게 연결한다. 예컨대 빠르고 정확한 직선 문화의 이면에는 인간의 삶을 쉽게 지치게 하고 더 많은 자연계의 희생이 뒤따르게 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마음과 마음, 이 마을과 저 마을의 사이 문화는 점점 존재할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연말 국내 한 항공사의 ‘땅꽁 리턴’ 논란도 참아내는 능력이 떨어져 문제가 된 사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직선의 삶이 주는 피해는 직장생활에서 상사와 부하 관계, 가정에서 부모와 자식 관계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을 심리학 용어로 ‘욕구불만 내성’이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욕구 불만을 인내하는 능력을 갈고닦지 못해 사소한 일에 화를 내고, 작은 불만과 부족을 참지 못하게 하며, 약간의 억압이나 스트레스에도 힘들어한다.

쾌적함이나 기분 좋은 것을 당연시하면 인간의 마음과 몸은 조금만 불편해도 견딜 수 없게 된다. 잠시 스트레스 없는 쾌적한 사회가 우리의 마음에서 내성을 빼앗아 감당하지 못하게 돼버린다는 것이 그러한 이유다. 최근 슬로우 푸드,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시티 등 느림의 인문학을 실천하려는 노력이 있어 한편 다행이다. 더 빨리 더 많이 갖기보다는 조금 천천히 알맞게 나누며 시간 속에 삶의 의미를 담는 연말연시를 기대해 본다.

<김재범 자운도예연구소 도예가·문화기획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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