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를 놓친 회초리
때를 놓친 회초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2.14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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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이가 9박10일의 첫 정기휴가를 마치고 부대로 복귀했다. 입대를 하루 앞두고 친구와 부모의 배웅을 받으며 기차에 오르는 아이의 늠름한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돌아오는 길에 동승한 아이 친구들에게 부모의 마음을 몇 마디 일러주었다. 그 중 한 가지는 무사하게 훈련을 마치는 것이라고 했다. 사고 없이 건강하게 훈련을 마치는 것이 아이를 군대에 보낼 때 모든 부모들이 간절히 바라는 것이라고 일러줬다. 입대 후 아이는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오히려 부모의 안부를 전화로 묻곤 했다. 그 마음이 그저 고맙고 대견할 뿐이다.

아이가 태어나 처 울음을 터트릴 때 그 울음조차 기특해 부모는 웃는다. 건강하게 세상으로 나왔다는 자체만으로도 고마워 한다. 그리고 먹이고 재우고 토닥이며 커가는 사이 세월이 오가는 것도 모른 채 아이의 재롱과 키우는 재미에 흠뻑 빠진다.

유아기를 지나 조금씩 자아가 형성될 무렵부터 아이는 부모와 대립구조에 든다. 그리고 하고 싶은 것을 저지당하면 저항하고 자기의 생각과 행동을 관철하려고 애를 쓰지만 일관된 부모의 말과 행동을 보고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에 대한 판단 기준을 세운다. 그렇게 성장시기를 거치면서 커가는 동안의 오랜 습관이 제2의 천성이 된다고 한다.

자식은 언제 봐도 예쁘다. 또한 커가면서 보여주는 재롱은 부모에게는 더없는 기쁨이 된다. 어떤 이는 이미 어릴적 재롱만으로도 부모가 평생 받을 효도를 다 받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때론 아이를 키우면서 애정을 숨기고 아이에 대해서 엄중해야할 때가 있다. 세상을 살면서 도리가 아닐 때와 인간으로서의 근본에서 흐트러지는 행동이나 생각을 할 경우이다. 그 교육은 분명히 어릴 적부터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요즘 한 TV 주말드라마의 불효소송사건은 세간의 이슈다. 아내 없이 삼남매를 키운 아버지의 눈물겨운 무한애정이, 지금까지의 무조건적인 사랑만으로 키워온 결과로 나타난 자식들의 이기적 무개념에 회초리를 드는 내용이다.

이미 커버린 자식들에게 아버지가 뒤늦게 회초리를 든다는 게 처음엔 상처와 아픔이 될지 모르지만 종내 뜨거운 깨우침을 준다는 설정인 것 같다. 그렇다면 극 중 아버지처럼 건강이 좋지 않아 남은 시간이 절박한 상황이라면 회초리는 어느 쪽이든 가슴 아픈 회한으로 남게 되지는 않을까.

오래 전 남자아이의 손을 잡은 젊은 엄마와 택시를 동승한 적이 있다. 아이는 차에 오르자마자 흙이 묻은 신발을 신은 채 하얀 시트 위로 이리저리 오락가락했다. 위험하기도 하고 또 깨끗한 시트를 버릴 염려가 있으니 아이를 좀 앉혀달라고 운전기사가 부탁하자 그 엄마는 자신의 아이를 기죽인다며 한껏 목청을 높였다. 결국 언쟁끝에 젊은 엄마와 아이는 내렸고 운전기사와 나는 그저 말없이 웃었던 기억이 난다.

성인이 된 다음의 말이나 행동은 어릴 적 교육의 오랜 습관일지 모른다. 그래서 ‘되고, 안되고’의 분별과 판단 기준은 어릴 적 교육이 좌우한다. 어떤 환경과 상황에서도 교육은 분명한 선(線)이 있어야 한다. 시기를 놓친 회초리가 서로의 가슴에 깊은 생채기를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정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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