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회-12. 칼은 살아서 말한다(9)
132회-12. 칼은 살아서 말한다(9)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2.09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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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마음이 어떻게 나의 마음과 다르고, 나의 마음이 어떻게 칼의 마음과 다르랴. 칼의 마음에 이 나라의 길을 맡길 것이다. 칼의 마음과 나의 마음이 맞닿아 길을 이루는 그곳에는 나는 적을 맞으리다.

저문 날이 가고 새날이 와도 이 나라에 대한 나의 사랑이 없다면 나의 칼은 날을 빛내지 못하리라. 나는 그 사랑을 이 칼에 담아, 피를 토하며 지켜보았던 가야 제국의 패망의 역사를 베고 말 것이다. 베어서 중단시키고 말 것이다.

이 나라의 군영마다, 나의 병졸이 머무는 산성마다 문이란 문은 모두 무쇠로 만들어 하늘이 내린 불이 와도 뚫지 못하게 할 것이다. 도성 밖 저 망망한 들에서 거두어들인 그 양식으로 군영마다 산성마다 뭇사람이 먹어도 3년은 먹고도 남을 양식이 또한 있지 않느냐.

어떤 적이든 오라. 이 나라 백성의 칼이 있고 나의 칼이 있는데 무엇이 두려우랴. 나는 나의 칼이 백성의 칼과 하나 되기 위해, 하나 되어 그들과 맞서기 위해 아우를 죽이고 나의 비마저도 율령에 따라 처형 하지 않았느냐. 나의 칼은 단호하게 맞설 것이다.

만백성의 칼도 장렬하게 맞설 것이다. 그리하여 가야 제국의 부활을 이 나라 다라에서 다시 불러올 것이다. 저 황강의 물이 마르지 않듯이 다라의 사직은 영원하게 할 것이다.

내가 나의 몸을 벨 수 없어서 이 나라의 칼이 될 수 없다면 백성의 칼이 기꺼이 내 몸을 베리라. 거기에 칼의 길이 있을 것이다. 거기에 칼의 생명이 있을 것이다. 칼이 가야하는 길은 타협의 길이 아니며, 굴욕의 길은 더욱더 아니다. 바람을 등지는 칼이 어찌 나라의 칼이 될 수 있으며, 그 나라의 길이 될 수 있겠는가. 혹독하게 후려치는 바람과 맞서서 바람의 몸을 베고 그 뼈마저 산산이 잘라낼 때, 칼은 비로소 그 나라의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칼은 죽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칼은 오직 살아서 말하는 것이다. 살아 있지 못한 칼은 칼이 아니다. 칼은 살아서 죽음을 벰으로, 죽음의 그 원흉을 벰으로 빛나는 것이다. 칼은 죽기 전에 말해야 한다. 죽어서 말하는 칼은 얼마나 비참하며, 죽어서 통곡하는 칼은 얼마나 처절한가. 나의 칼은 살아서 말할 것이다.”

진수라니 국왕은 비장한 마음으로 다시 칼을 잡았다. 다시 억새꽃이 한꺼번에 웃음을 터뜨리듯 분분히 휘날렸다. 그렇다, 저 억새꽃이 다 지기 전에 적은 올 것이다. 와서 저 쓸쓸한 억새의 웃음처럼 분분히 이 강산의 가슴을 찢고 피 흘리게 할 것이다.

왕은 고개를 들어 먼 산을 보았다. 능선과 능선이 만나 산천마다 길을 만들고, 그 길 너머로 아득한 고을이 보였다. 언젠가 조용한 도성의 망망한 들을 가르며 적이 올 그 길도 가을 햇볕 속에 아득하기만 하였다.

글=이충호/그림=황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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