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회-12. 칼은 살아서 말한다(8)
131회-12. 칼은 살아서 말한다(8)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2.08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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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다라국(합천가야)이 있게 해준 선왕들의 유택 앞에 엎드리니 진수라니는 왕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이 다시 한번 어깨를 억눌렀다. 오늘 선왕들 앞에서의 이 숙배는 나라의 운명을 건 건곤일척의 싸움에서 이기게 해 달라는 간절한 소원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그는 더 경건해 지고 엄숙해 지지 않을 수 없었다.

선왕들의 유택 앞에서 이 엄숙함이 자신을 다잡는 결의가 될 것이기에 비장한 마음으로 그 한 마디 한 마디를 되뇌며 일어섰다. 그리고 환두대도를 뽑아 허공에 치켜들었다.

칼은 허공을 가르며 영리한 소리를 내었다. 마음 안의 소리가 곧 마음 밖의 소리와 다르지 않았다. 몸의 안과 밖이 함께 우는 칼의 소리는 늘 경쾌했다. 칼의 소리는 늘 그렇게 충직했다.

진수라니는 그 옛날 부왕이 어린 그에게 칼을 쥐어주며 했던 말이 생각났다.

“칼은 사람을 안다. 칼의 마음과 사람의 마음은 다르지 않다. 너의 마음이 바르지 않을 때 칼의 마음 또한 바르지 않다. 너의 마음이 가장 진실할 때 칼을 가슴에 품어라. 칼을 사랑하지 않으면 칼이 너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반역자의 칼은 언젠가는 돌아와서 자신의 목을 벤다. 그것 또한 칼의 진실이다.”

부왕의 말을 되새기며 왕은 생각했다.

‘아- 이제 알 것 같습니다. 너의 마음에 따라 칼은 그 강과 약이 다르고, 준마가 그 주인을 알아보듯이, 칼은 그 주인을 알아본다고 하시던 그 말씀도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그럴 것 같습니다. 주인을 잘못 만난 준마는 뛰지 않듯이 주인을 잘못 만난 칼은 예리함을 잃을 것을 말입니다. 군왕을 잘못 만난 백성은 주인을 잘못 만난 칼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리고 스스로에게 반문했다.

“나는 마음과 몸이 함께 우는 칼의 예민함을 지녔는가? 그리하여 적의 숨소리마저 두 동강 내는 칼의 그 영민함을 과연 나는 지녔는가? 전신을 바쳐서 이루어 내는 칼의 묵묵함을, 나는 이 나라의 군왕으로서 지녔는가? 그렇지 않다면 내가 어떻게 스스로 군왕이라 말할 수 있으랴.

나는 갈 것이다. 칼의 그 묵묵함으로. 주어진 일에 전신을 바치는 칼과 같은 그 헌신으로 이 나라의 길을 갈 것이다. 이 나라 다라국의 야철지에서 밤을 새워 단조한 단단한 그 무쇠로 날마다 일백 사십 개의 칼을 만들고, 그리고도 넘쳐나는 철정으로 날마다 이백서른 개의 창과 일천 개의 화살촉을 만들어 산성마다 비축해 두지 않았는가.

비록 일만의 군대가 온다고 하더라도 십만 개의 화살로 적을 쏠 것이며, 그리고 남는 화살로 쓰러진 자의 수족마저도 다시 쏠 것이다. 또 다른 10만 군병이 온다면 또 다른 100만 개의 화살로 그들을 쏠 것이다. 궁성과 산성의 군기고마다 넘쳐나는 그 칼로써 적을 벨 것이다.

적이 오는 날, 저기 저 산봉우리와 산봉우리가 서로 어깨를 걸고 내통하여 준령을 이루듯 이 나라의 칼이란 칼은 모두 모여 서로 내통하여 적 앞에 번쩍이는 날의 산맥을 이룰 것이다.”

글=이충호/그림=황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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