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싯돌을 가진 사람
부싯돌을 가진 사람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2.07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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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에서는 보기 드물었던 눈이 이곳에선 곳곳에 쌓여있다. 12월은 한해를 마무리 하는 시간 그리고 한 학기를 마치는 시간이기도 하다. 학교 교학과에 갔더니 후배이자 조교인 친구가 대학원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물었다. 얼마 전 만났을 때 서울에서 살고 싶다고 하더니 그동안 대학원 준비를 하고 있었나보다. 축하와 함께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었는데 문득 10년 전쯤의 나의 시절이 떠올랐다. 당시 동기들 중 대학원 준비를 하는 사람은 몇 없었고 필자가 졸업한 대학원은 더더욱 그랬다. 졸업작품전을 일찍 끝내는 우리학교 특성상 그 전시가 끝나고 나면 사실상 각자의 길을 가고 학교 실기실에 혼자 있을 때가 많았다.

대학원 시험을 보고 합격을 하고 집을 구하고 대학원 공동 실기실에서 작업을 했다. 휴학 없이 이어달리다보니 전환점이 필요했고 어학연수를 선택했다. 대학졸업 후 서울로 왔을 때에야 비로소 처음 ‘지방대’에 대한 세상의 인식을 실감하게 됐다. 당시 필자는 그런 인식에 놀라고 위축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어학연수를 통해 더 큰 세상을 보고 오자 그런 건 티끌중의 티끌임을 알았고 그 때부터 그런 인식에 휘둘리지 않을 내성까지 생겼다. 영국에서의 시간은 정말이지 꿈같았다. 오직 공부와 생활에 충실하고 즐겁게 지내면 되는 거였다. 그런데 연수를 마치고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현실에 대한 질문들이 쏟아졌다. 학교는 어찌 할 건지, 졸업 후엔 뭘 할 건지, 남자친구는 있는지 없는지, 결혼은 언제 하는지 안하는지. 다양한 모양의 ‘뾰족한 수’에 대해 사람들은 묻고 또 물었다.

그런 경험 덕택에 필자는 학생들에게 학교를 마치면 각자 나름의 뾰족한 수를 지니고 있다가 사람들이 그걸 보여 달라고 할 때 보여줄 수 있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해 준다. 그렇지 않으면 끝없이 괴롭힘을 당하거나 상처받을지 모른다고도 말해 준다.

종강과 함께 1년간 내게 배운 학생들과 시간을 가졌다. 스물둘, 스물셋, 스물넷 내가 세상을 모르던 그 때 그 나이다. 세상 모두가 꿈으로 가득할 나이다. 하지만 그들이 앞으로 만나게 될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 최근 몇 년 예술관련 학과의 취업률로 학교 평가를 하고 취업률이 낮은 과를 없애거나 없애려 해 반발을 산다는 기사를 여럿 보았다. 예술가와 취업은 별개다. 그럼에도 취업을 예술가의 자질 판단의 잣대로 이용하는 현실이 서글프다. 아마 취업을 했다는 학생들도 비정규직이거나 계약직일 것이다.

미술대학을 졸업한다는 건 어쩌면 부싯돌을 쥐고 세상에 나가는 것과 같지만 누구도 부싯돌을 제대로 부딪칠 수 있는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누군가는 성냥으로 불을 피우고 누군가는 라이터를 쥐고 있을 테지만 시간이 지나도 우리들의 손에 들려있는 것이 초라한 부싯돌이라면 남들보다 수백 번 수천 번 불을 피우기 위해 돌을 부딪치는 수밖엔 없다. 그러는 동안 성냥이나 라이터를 가진 이들이 부러워 당장이라도 내던져버리고 싶을지라도 성냥이 다 타버리고 라이터의 기름이 다 돼서 더 이상 리필 할 수 없게 될 때 우리는 여전히 이미 수없이 부딪쳐 이젠 불 피우기가 쉬워지기까지 한 부싯돌을 가지고 있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을 필자는 ‘희망’이라 부르고 싶다. 다만, 부싯돌을 가진 사람에게 세상은 이 겨울날 날선 바람처럼 혹독하고도 혹독한 것이 될 것이리라.

<이하나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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