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명의신탁의 그림자
계약명의신탁의 그림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2.07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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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님 30년 전에 제가 산 집인데, 사정이 있어 처남 명의로 등기해 두었더니, 갑자기 처남이 나가라고 합니다. 이 겨울에 돈도 없는데 네 식구 데리고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에 이런 경우도 있습니까?”, “ 변호사님 동생 명의로 집을 샀는데, 동생이 중개사무소에 집을 내놓아 다른 사람한테 집을 팔아버렸습니다. 어떻게 하죠? ”, “20년 전에 사업하다 망해서 재산 다 처분하고 조금 남은 돈으로 식구들 거처나 마련하겠다고 집을 샀는데, 혹시나 차압 들어올까 해서 부하직원 명의로 해두었더니, 글세 그 직원이 얼마 전에 죽었지 뭡니까. 그런데 그 직원의 아들이 와서 다짜고짜 자기들 집이니 나가라고 합니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자주 듣게 되는 이야기 중 하나가 바로 ‘명의신탁’문제다. 특히, 채무가 많아 자기 명의로 집을 소유할 경우 강제집행을 받을 염려가 있을 때 명의신탁이 많이 이루어진다. 문제는 이런 경우의 대부분이 경제적으로 매우 열악하고 어려운 계층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유일한 재산을 상실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러나, 부동산을 명의신탁 한 경우 명의신탁자가 후일 자신의 권리를 돌려받는 다는 게 생각처럼 그렇게 녹녹치가 않다. 우리 법은 ‘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부부나 종중관계가 아닌 이상 원칙적으로 명의신탁약정 자체를 무효로 보고 있다. 또 명의신탁을 한 사실이 적발될 경우 해당 부동산 가액의 100분의 30에 해당하는 금액의 범위 내에서 과징금이 부과되고, 드문 경우이기는 하지만 경우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도 있다.

통상 타인 명의로 부동산을 구입하는 경우 명의신탁의 유형 중에서도 이른바 ‘계약명의신탁’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다. 계약명의신탁은 부동산 매수대금을 누가 실질적으로 부담하였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부동산 명의인이 해당 부동산의 소유권을 취득하며, 명의신탁자(실제 부동산을 매수한 사람)와 명의수탁자(부동산 소유명의를 빌려준 사람)사이 명의신탁 약정은 무효가 된다. 결국, 타인 명의로 부동산을 구입한 사람은 적어도 법률적으로는 해당 명의인에게 부동산을 돌려줄 것을 요구할 수 없다. 이 경우 명의신탁자가 취할 수 있는 것은 명의수탁자에게 매매대금 상당액의 부당이득금 반환을 구하는 것이 고작이다.

하지만 이 역시 매매대금 지급일로부터 10년이 지나면 행사할 수 없도록 돼 있다. 더욱이 명의수탁자가 해당 부동산을 제3자에게 처분하면 제3자가 명의신탁이었는지 여부를 알았음과 상관없이 그 3자는 해당 부동산의 소유권을 유효하게 취득하게 된다.

법리가 이렇다 보니, 사업을 하다 부도하는 등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채무초과 상태가 된 사람들이 보유 재산을 처분해 채무를 일부 변제하고 조금 남은 돈으로 식구들이 거주할 수 있는 작은 집 하나 정도를 타인명의로 마련해 두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10년이 경과된 이후 해당 부동산을 완전히 상실해 버리거나 아무런 대가도 얻지 못하는 사례가 자주 발생한다.

우리 사회는 아직 ‘법’과 ‘계약’보다 ‘정’과 ‘관계’를 중시하는 경향이 적지 않다. 그 결과 명의신탁이 다른 국가들보다 훨씬 널리 퍼져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명의신탁처럼 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거래를 하게 될 경우 후일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할 때 법에서 아무런 도움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계약명의 신탁은 매우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

<김상욱 변호사 법률사무소 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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