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 발호는 나라에 환란을 부른다
비선 발호는 나라에 환란을 부른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2.0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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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정국에 급 회오리가 몰아치고 있다. 지난달 28일 한 종합 일간지가 비선(秘線)실세가 국정에 개입하고 있다는 정황을 보도하면서 나라가 온통 벌집을 쑤셔 놓은 듯하다. 급기야 청와대와 대통령이 직접 나서 사실을 부인하고 법적인 조치를 취했음에도 소동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일파만파로 확산되는 형국이다. 그도 그럴 것이 보도의 근거가 청와대에서 작성된 것으로 비선실세와 관련된 보고서라며 다음날 같은 신문이 그 비선실세의 국정개입은 확실하다는 확정성 보도를 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파괴력이 심상치 않을 전망이다. 대통령 임기가 절반 이상 남은 상태에서 정권 말기에나 있음직한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혹자는 현 정권에 치명적 위기가 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내놓을 정도다. 하지만 이 문제는 지난 대선 전후부터 시작돼 현재까지 루머성 이슈로 계속 누적돼 온 것이다. 이번 언론보도는 기폭제 역할을 한 것뿐이다.

역대 어느 정권이든 시기의 문제일 뿐 예외 없이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최고 권력자의 의지, 의중, 행태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최고 권력자가 모든 일을 다 알 순 없다. 그래서 비서실장을 정점으로 피라미드 계층조직이 존재한다. 관료조직의 부작용이나 비효율성을 알면서도 불가피하게 공식적인 보고체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공식적인 체계가 껄끄럽고 맘에 안 찬다고 해서 비선라인에 눈길을 주거나 그런 낌새만 보여도 비선조직은 날개를 달고 발호한다. 그 순간 공식라인은 무력화 되고 심지어 멀쩡한 바보가 되기도 한다. 김기춘 비서실장에 대한 비난과 질책이 무성하다. 그런데 그가 “마치 유령과 싸우는 것 같다”는 소회를 피력했다. 비서실장도 모른 채 대통령과 유령처럼 교감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말이다. 이런 형편에 비서실장의 영(令)이 설리 만무하다.

의외의 인물이 발탁 되는 ‘비선 줄타기 인사’도 한 요인이다. 비서실장이 인사위원장인데 눈에 보이지 않는 줄을 타고 날아 든 인사가 자리를 꿰어 찬 뒤 주위를 어지럽히면 비선은 신이 나서 날뛰게 된다. 비선권력이 문제로 부각될 때 이것을 바라보는 최고 권력자의 시각도 원인 중 하나다. 이것은 특히 이번 사건에서 확연히 드러나는 징후이다. 실명이 거론되고 정치권에서는 ‘게이트’라고 까지 치부하는 이번 사건에 대한 대통령의 성격규정은 놀라울 정도다. 문건유출을 국기문란으로 규정한 것은 적절하지만 청와대에서 작성한 문서가 유출된 것에 방점을 찍고, 그 문서를 근거로 보도한 언론을 비난하는 듯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초점이 맞지 않다.

국민으로부터 선출되지도, 법적으로 임용되지도 않은 비공식권력이 나라의 정책이나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이 바로 국기문란이다. 또 그것이 민주적 기본질서를 어지럽히고 국기를 문란케 하는 본질이다. 본질을 벗어나 이차적인 문서유출에 방점을 찍고 검찰에 엄정 조치를 촉구하기 때문에 ‘꼬리 자르기’, ‘수사 가이드라인 주기’ 등의 불필요한 오해를 받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대통령과 청와대가 현재 보이고 있는 반응은 ‘비선 국정농단 사건’을 잠재우기에 충분치 못하다. 오히려 의혹을 더 키우지 않을까 걱정된다. 측근, 복심, 비선, 실세, 문고리-모두 환관에 버금가는 말들이다. 환관은 환란을 부른다. 환관(宦官)을 물리치고 환관(歡官)으로 바꾸소서.

<박기태 한국정경연구원장· 전 경주대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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