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2.03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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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핀란드 노키아는 전 세계 휴대전화시장의 40%를 점유했다. 또 1998~2011년까지 13년 동안 업계 세계1위를 지켰다. 하지만 2011년 봄 최고경영자 스티븐 엘롭이 “우리는 불타는 플랫폼 위에 서 있다”고 선언하면서 그해 마이크로소프트에 매각됐다. 그리고 휴대폰 부문 노키아 브랜드는 역사 뒤편으로 사라졌다.

노키아의 패착 요인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주변 환경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조직내부의 경직성과 자만이다. 2007년 미국 애플이 아이폰을 내 놓으면서 세계 휴대폰시장의 흐름이 스마트폰 쪽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때 세계시장의 70%를 석권할 정도로 군림했던 노키아는 미국시장을 대수롭잖게 여겼다. 그 배경에는 미국과 북유럽의 역사적 연관성도 적지 않다. 1800년대 후반 많은 북유럽 사람들이 미국으로 이민 갔다. 그들은 대부분 먹고 살기 어려울 정도로 가난했다. 그래서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사람들 상당수는 아직도 미국에 대한 옛 이미지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가난뱅이들이 우리 것을 살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2006년 노키아 CEO에 취임한 올리페카 칼라스부오는 기술통이 아니라 재무통이었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비용관리부터 시작했다. 정상(頂上)에 오를 만큼 올랐으니 제반비용을 줄이겠다는 게 그의 경영철학이었다. 그러자 한때 혁신의 상징이었던 노키아의 기업문화가 점차 관료적이고 안전지향적인 문화로 바뀌어 갔다. 핀란드에서 가장 공부 잘하는 대학생들이 노키아에 입사해 많은 월급을 받고 안정적인 삶을 누리고 싶어 했다. 반면 내부에 있던 기술 인력들은 자신들의 재능을 제대로 펼칠 수 없어 밖으로 뛰쳐나가 벤처기업을 창업하는 역 현상이 벌어졌다.

핀란드는 소수 대기업이 국가경제를 지배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노키아의 경우 1998년부터 2007년까지 10년간 핀란드 전체 법인세의 23%를 냈고 전체 수출의 약 20%를 차지했다. 우리와 사정이 비슷하다. 지난해 우리나라 대기업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6.9%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2011년 노키아가 휴대폰부문 사업을 접자 그 파장이 국가전체에 미쳤다. 지난해 핀란드 경제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도 이런 여파와 무관치 않다.

“성공하고 있을 때 새로운 것에 도전해야 한다.”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잡스기 살아생전에 했던 말이다. 이 말처럼 도전의식이 없었기 때문에 노키아는 역사의 한 장(章)으로만 남았다. 하지만 이 말이 반드시 기업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국가나 지자체의 경제정책 운용기조에도 이용될 수 있다. 지금 울산은 도시경제가 지나칠 정도로 대기업에 의존하는 상태다. 만일 몇몇 대기업이 ‘노키아의 몰락’을 맞는다고 가정하면 도시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구태여 물어 볼 필요도 없다.

노키아가 물러난 자리를 요즘은 핀란드 벤처 기업들이 메우고 있다. 수퍼셀과 욜라라는 스마트폰 운영체제 개발회사는 지난해 전체 매출액이 1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에겐 아직 이런 벤처기업들이 없다. 특히 대기업이 해외로 빠져 나가고 기존 산업이 성숙돼 사양길에 접어들수록 우리에겐 새로운 탈출구가 필요하다.

그런데 요즘 마음이 더 급해졌다. 잘 나가던 현대중공업이 지난 2·3분기 약 3조원의 적자를 냈다. 그 어렵다던 국제금융위기 때도 끄떡없었던 현대중공업이 임원진의 30%를 갈아 치웠다. 국제경기 탓도 있지만 새로운 것에 도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태를 반복하는 요소가 현대중공업에는 또 하나 있다. 20년만에 현중 노조가 파업을 했다. ‘바보는 경험을 통해 배운다’는 말이 새삼스럽다.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정종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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