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예감
겨울 예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2.0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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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과 초겨울 사이, 종일 비 내린다. 그다지 소란스럽지도 유난스럽지도 않는 조용한 비다. 계절과 계절 사이 사색하기 참 좋은 비다. 추수와 짚걷이가 끝난 들판은 곧 바람을 맞이할 것이다. 그래선지 텅 빈 무 배추밭이 오늘따라 무척 쓸쓸해 보인다.

언제부턴가 마을은 새들의 차지다. 까치가 집짓기에 분주한 사이, 가끔 산 꿩들이 적막을 흔들고 대숲과 덤불로 뱁새와 참새 떼들이 번갈아 날아든다.

올해는 마을 어른 몇 분이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장례 후 다시 마을로 돌아온 망자는 드물었다. 한 분을 제외하곤 다른 곳에서 영면하고 계신다. 가뜩이나 빈 마을이 더 텅 빈 느낌이다. 올 봄에 수십 년 객지생활을 청산한 뒤 식솔들을 데리고 귀향한 K형의 정착이 그나마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강 건너 이웃 마을도 마음이 어수선하긴 마찬가지다. 수년 째 답보상태에 있던 이주문제 실마리가 풀리는 듯해 반가운 한편, 걱정이 앞선다. 어쩔수 없이 고향과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하는 일부의 아픔 속에 현실적 보상 문제가 대부분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올 가을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 반가움과 신비로움을 안겨주었던 마을 앞 척과천 연어는 다행히 우리로 하여금 한시름 놓게 했다. 가뭄으로 산란과 부화에 지장을 주면 어쩌나 염려했는데 비켜갔기 때문이다. 현재의 유입수량으로 비추어 치어들이 자라고 바다로 향하는 데는 지장이 없어 보인다.

다시 마을이 활기를 찾았으면 좋겠다, 지금의 이 쓸쓸함과 고요가 계절과 날씨 탓만 아니다. 겨울의 초입에 저렇듯 주저리 달려 있는 감이 까치밥으로 남겨둔 게 아닌, 그것을 딸 사람들이 없다는데 보이지 않는 슬픔이 깔려 있다. 이는 분명 그리움의 엄습이다.

오후 들어 빗방울이 굵어진다, 처마 밑 빗물소리도 들린다, 이 마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향수에 젖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바쁜가. 하루하루가 살기 힘들도록 무지 바쁜가. 지금 당신이 어떤 사회적 구조적 위치에 밀접해 있을지 모르나 한 번쯤 짬 내어 고향으로 오라. 저 감도 따 가라. 혼자 먹기 버거우면 주위에 나누어주라, 그게 무슨 부질없는 짓이냐고 할진 몰라도 별일 없는 날엔 주저 말고 고향으로 오라. 그래, 안다.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몸부림치고 있는지를. 얼마 전에는 십수 년 방치된 마을제당과 당산목도 다시 세웠다. 이 얼마나 마을이 마을다운가. 지나는 걸음, 머리 한번 숙이며 예를 표하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인가.

올 겨울에는 마을이 꽉 찼으면 좋겠다. 황량한 바람 대신 사람들의 따뜻한 온기로, 숨죽인 물소리 대신 아이들의 아우성으로, 나뒹구는 낙엽 대신 반가운 발자국 소리로 마을을 가득 채웠으면 좋겠다. 더 나아가 먼저 간 사람들의 뒷얘기가 잔잔한 감동과 삶의 지침이 되었으면 좋겠고, 한 하늘 아래 어깨 맞대며 부대끼며 살았다는 것으로 참으로 다행이고 더없는 행복이었으면 더더욱 좋겠다. 졸시 ‘겨울 예감’을 조심스레 꺼내며 중얼거림을 마친다.

‘풀벌레 떠나 버린 고향의 겨울 초입 /막차는 늘 그랬듯 텅 빈 채 돌아가고 /간간이 개짖는 소리, 노인들 기침 소리 //비운다는 건 다른 무엇을 채우는 준비라지만 /주저리 홍시감이 언 채로 겨울을 난다면 /그것은 그리움 뒤에 숨은 두려움의 엄습이다 //길들이 지어진 건 억새풀 탓만 아니다 /바람도 자꾸 헷갈려 뒷걸음치는 요즘 /길 잃은 귀뚜리 한 마리 벽 안에서 목이 쉰다’

<김종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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